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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막힌 세상 이야기

KINO의 이슈-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 다른 목소리에 대한 단상

by 양철호 2016. 12. 23.

 

검찰은 박유하 교수의 책이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징역 3년을 구형했다.

재판부에서 판결이 어떻게 날지는 모른다.

박유하 교수는 다른 목소리가 인정받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목소리......

 

학문적 연구든, 정치적 입장이든,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고, 그것에 대해 보장받아야 한다는 부분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나는 당신의 의견에 반대한다. 하지만 당신의 당신의 의견을 말할 권리를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한 볼테르의 말도 같은 의미이다.

뭐, 위 말은 사실 볼테르가 한 말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런 것은 제쳐 두고...

어찌 되었든 다른 입장이라도 주장하고 논쟁하고 할 권리는 있으며, 이런 것들이 자유롭게 오고가야 그것이 건강한 사회라는 말이다.

맞는 말이다. 틀리지 않다.

그럼 이제 몇 가지 짚어보자.

 

현재 한국 사회는 다른 목소리를 인정하는 사회인가?

최소한 보수, 기득권은 진보의 목소리를 억누르기 위해 수많은 압력과 압박, 겁박을 가해왔다.

그래서 누구는 미리 겁을 먹고 머리를 조아렸고, 누구는 대항하다 직장을 잃고 거리로 나섰다.

언론 자유도가 떨어지고 제대로 보도가 실종되고, 자유로운 의견이 막혀버리고, 국가가 나서서 역사 교과서마저 한 목소리만 내야 한다는 이 사회 분위기가 과연 누구에 의해서 조장되고 만들어진 것인가.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 내용을 읽어보지 않았다.

기사로 난 내용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자발적 매춘이라는 단어 하나가 던져주는 의미는 매우 크다.

학문적 연구라면 그 수많은 반박 자료들, 역사적 근거들, 증언들이 어째서 무시되었는지에 대해서도 밝혀야 한다.

다른 주장을 반박하고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려면 다른 주장이 틀렸다는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과연 박유하 교수의 주장이 그런 근거들을 제대로, 치밀하게 제시했을까?

만약 그 근거들이 제대로 제시되었다면 오히려 사회적 파장이 더 커졌을 것이며, 학문적 논쟁, 역사적 논쟁으로 확대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논쟁은 그저 명예훼손으로 그쳤다.

결국 학문적 근거 제시는 부족했다는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결국 자신이 내는 다른 목소리에 근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저 다른 사람의 의견에 반대만 외친다고 그것이 다 용인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박근혜 탄핵에 다른 목시를 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왜 박근혜 탄핵이 문제인지 조목조목 따질 수 있는 근거가 필요하다.

북한의 지령이니, 다들 돈 받고 나왔다느니 하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주장이 아니라.

그래서 사람들은 박사모나 친박의 주장을 같이 이야기할 가치도 없는 상대로 치부해버리는 것이다.

 

박유하 교수에게 묻고 싶다.

과연 다른 목소리를 내기 위해 얼마나 연구했나? 얼마나 근거를 가지고 있나?

학자라면 최소한 자신의 주장이 칭얼거림으로 들리지 않기 위한 노력을 해왔을 것 아닌가?

일본은 독도를, 위안부를,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20세기 일제 강점기의 자료만을 제시한다.

자신들이 유리한 자료들만 제시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 이전의 역사적 자료들도 가지고 있다.

또한 조금씩 드러난 전쟁 관련 자료들에서 드러나는 일본의 만행에 대한 자료들도 있다.

이런 자료들도 조목조목 따져본 것이 맞는지 물어본다.

 

다른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문제다.

그 자유를 박탈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무조건 다른 목소리가 다 용납된다는 것도 아니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내가 주장하는 것이 옳다면 그 옳음을 증명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그 책임을 다 해야 되는 것이다.

자유란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목소리를 내고 싶다면 그 다름에 대해서 책임있는 근거를 제시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