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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호
스토리 파고들기, 문학, 영화를 비롯한 온갖 미디어, 그리고 세상 사는 이야기까지 다양하고 재미있는 스토리들을 찾아 소개하고, 분석하고, 뜯어고치는 곳. 세상을 향해 일갈하기도 하고, 가슴 따뜻한 이야기와도 만날 수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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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8. 11. 08:00 Story Doctor/Movie

공포의 미학

 

공포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공포 그 자체이다. 대부분의 감독들은 이런 신념을 가지고 가장 무서운 장면들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피가 튀고, 머리가 잘리고, 관절을 비틀어대기도 하면서 어떻게 해야 가장 무서운지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하지만 정작 놓치는 것은 공포는 장면이 주는 순간이 아니라 전체의 분위기에서 나온다는 것을 쉽게 잊는다.


 


 

조지 로메로 감독이 최초의 좀비 영화인 살아난 시체들의 밤을 만들었을 때, 영화를 본 관객들은 상상 이상의 공포에 감염이 되어버렸다. 사실 영화에 등장하는 좀비는 티가 너무 나는 분장에 흐느적거리며 느릿느릿 걸어가는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이 모습이 얼마나 우스웠으면 후일 새벽의 황당한 저주라는 영화로 패러디 되었을까. 하지만 영화의 분위기는 결코 우습지 않았다. 죽지않고 끊임없이 살아나 밀려오는 좀비들은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장벽처럼 느껴졌다. 사방에서 조여오는 좀비의 등장에 호러팬들은 열광했다. 로메로 좀비 시리즈의 탄생이었다.


 

스필버그의 영화 죠스’는 상어와 인간의 싸움을 그린다. 상어는 실존하는 생명체이다. 또한 바다의 폭군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두려운 장면은 성어에 의해 사람이 찢기는 장면이 아니다. 음산한 존 윌리엄스의 음악과 함께 상어가 어디서 등장할지 모르는 분위기에 있는 것이다. 

 

현재, 어떻게 귀신을 무섭게 등장시키고, 어떻게 사람을 더욱 잔인하게 죽이는지에 치중하는 공포영화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이유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결국 가장 핵심적인 공포의 요소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거나 생각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공포영화에서 가장 공포감을 자아내는 충격적인 요소는 무엇일까? 분위기? 음악? 영상? 아니다. 그것은 바로 실화, 즉 사실성이다. 리얼리티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논픽션이라는 점이 더욱 공포감을 자아내는 것이다. 바로 우리 옆에서, 언젠가 나에게 찾아올 수도 있는 일이라는 점은 영화 속의 영상을 현실로 바라보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그럼 이제부터 현실과 허구, 그 경계에 있는 공포영화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posted by 양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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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8. 4. 08:00 Story Doctor/Movie

 


 

시간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그저 흘러가는 하나의 흐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는 아주 작은 의미라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결국 핵심은 시간은 지나간다는 것이다. 가장 소중한 순간이라도, 아니면 헛되이 보내는 순간이라도 말이다.

 

스콧 피츠체랄드의 원작 소설을 영상화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시간의 흐름이 서로 다른 두 사람의 만남을 통해 사랑, 그리고 소중한 순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분명한 것은 이는 시간에 얽힌 공상과학적인 영화는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드라마틱하고 애절하며, 감성적인 영상이다.


벤자민 버튼은 80대의 노인의 모습으로 태어난다. 그리고 그는 하루하루 살면서 점점 나이가 젊어진다. 그런 그에게 데이지는 너무나도 순수하고 아름다운 소녀였다. 60대의 나이가 되어 있는 벤자민과 6살의 데이지의 만남은 어쩌면 운명적으로 엇갈리는 시간을 이미 예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서로의 감정들을 뒤로하고 벤자민과 데이지는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다가 결국 둘의 나이가 비슷해지는 시기에 다시 만나게 된다. 이 한 순간을 위해 그토록 오랜 세월을 기다렸다는 듯이 두 사람은 뜨거운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그것도 한 순간, 벤자민은 다시 데이지의 옆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젠 너무 어려진 벤자민의 모습을 발견한 나이가 들어버린 데이지는 그의 최후를 지켜본다.



 

두 사람의 시간은 반대로 흐른다. 결국 둘 사이의 접점은 정말 일순간에 불과하다. 서로 나란히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엇갈리는 운명에서 교차점을 찾기는 어렵다. 그 순간에 둘의 사랑은 그 누구보다도 뜨거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시간이 그들에게 가르쳐 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무리 짧은 순간이라 하더라도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랑은 아무리 순간이라 하더라도 진실했기에 그토록 오랫동안 잔상을 남기고 기억되는 것이다.

이 작품이 가지는 독특한 시간에 대한 설정은, 오히려 사랑에 대한 감정을 더욱 부각시키는 데 효과적이다. 더군다나 인간이 닥친 현실이나 처한 상황에 대한 이유가 아니라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라는 점에 더욱 힘이 실린다. 그들의 사랑은 서로 짧게 끝날 것을 당연히 알지만 결코 식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 하나의 작품이 또 있다.

선로 위에서 나 돌아갈래!”를 외치던 한 남자를 기억하는가? 그 남자는 그 외침 이후로 과거로 거슬러간다. 선로를 따라 거꾸로 가는 기차의 모습, 그리고 거슬러 올라간 이후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 바로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이다.

이 작품은 시간을 재해석한 것은 아니다. 그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한 남자의 삶이 어떠했는지 무덤덤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왜 그가 영화의 맨 처음 시작에 그렇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가 어떤 계기를 겪어 그런 성격을 가지게 되었는지 영화는 아무런 장치 없이 보여주기만 한다. 그리고 해석은 오로지 관객의 몫이다.



 

여기서 시간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타임머신 같은 존재가 아니다. 그저 그가 겪어온 주마등 같은 기억의 파편일 뿐이다. 그러나 그 파편이 한국 현대사에서 너무나 강렬한 순간순간에 존재한다는 것이 그를 바꾼 이유일 것이다.

이 영화는 역사가, 그리고 사회가, 한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순수하고 깨끗했던 한 남자가, 험난한 현대사 속에서 변화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결국 역사라는 시간의 쌓임이 주는 무게감을 고스란히 느낄 수밖에 없다. 나 또한 결코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제껏 시간이 가지는 개념, 그리고 시간이 표현되는 방법들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우리는 시간을 잘 이해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아직 시간은 우리가 이해하기에 너무나도 복잡하고 오묘한 세계임에는 분명하다. 또한 꽤 재미있는 소재임에도 분명하다. 과학도, 판타지도 가능한 것이 바로 시간의 세계이다.

시간이 주는 그 무한한 잠재력과 가능성, 그리고 기발함에 좀 더 시선을 던진다면, 더 재미있고 의미있는 스토리들이 나타날 것이다. 이제 시계를 들여다보고 초침이 가는 것을 눈 여겨보자. 어느 순간 그 초침이 멈추게 되면 전개될 세상이 어떨지 상상해보자. 모든 것의 시작은 바로 상상에서 시작되니까.

posted by 양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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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7. 5. 08:00 Story Doctor/Movie

 



이제 조금은 과학적인 이야기를 해볼 차례이다.

 

부친 살해 패러독스는 과거로의 여행이 가능하지 않다는 논리적 근거를 제시한다. 즉 과거로 가서 부친을 살해한다고 해도 내가 속해있는 미래에 나는 이미 존재하기 때문에 미래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하지만 상대성이론을 보면 빛보다 빠른 속도라면 과거로 갈 수 있으며, 빛과 같은 속도면 미래로 갈 수도 있다. 빛과 같은 속도로 물체가 이동하게 되면 물리적 시간이 0이 되어 버린다는 것이 상대성이론이다. 그리고 빛보다 빠른 속도를 내면 물리적 속도고 마이너스가 되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문제는 빛보다 빠르게 이동할 수가 없다는 것을 상대성이론은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뭐 각설하고, 이론적 근거들을 살펴보면 결국 어떠한 장치든 무엇을 이용하든 과거로 온다고 해서 미래가 바뀌지는 않는다는 점에서는 결론이 같다. , 전에 살펴본 백투더퓨처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시간대가 생겨나는 것이다. 여기에 재미있는 영화가 하나 있다. 바로 SF 액션 영화인 터미네이터가 바로 그것이다.

 

터미네이터는 먼 미래, 기계와 인간의 싸움이 한창일 때, 기계가 인간의 리더를 살해하기 위해 터미네이터를 과거로 보낸다는 설정이다. 물론 인간도 과거로 전사를 보내 리더를 보호하고자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이론적으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 과거로 온 터미네이터가 리더를 살해했다고 하자. 그럼 미래에 리더는 사라져버리고 기계가 승리하는 세계가 될까?

 

아니라는 것이다. , 어차피 인간 측 리더가 존재하는 세상은 있다. 그리고 그 세상에서 터미네이터를 보낸 것이다. 미션을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미래는 변하지 않는다. 단 미래에 인간 저항군이 없는 미래가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하면, 기계가 지배하는 미래도 있고, 인간과 기계가 싸우고 있는 미래도 있고, 기계가 아닌 인간이 평화롭게 사는 미래도 존재한다. 그리고 영화는 그것을 다루는 근거로 2편의 감독판에서 평화로운 미래를 잠깐 보여주기도 한다.

 

영화속에서 보여지는 주인공은 기계와 맞서 싸울 운명을 타고난 것뿐이다. 그리고 운 나쁘게 기계들에게 선택된 주인공일 뿐이다. 다른 세계의 주인공은 평화롭게 살고 있거나, 아니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되었을 수도 있다.

 

결국 상대성 이론처럼 시간이라고 하는 것도 절대적인 것이 아닌 상대적인 것이라는 설명이 된다. 서로 다른 세계에 적용되는 각각의 시간. 그 시간들은 각각 생명력을 가지지만 다른 시간대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만약 시간 여행을 하게 된다면 내가 존재하는 시간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시간대의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게 되는 것이 아닐까? 즉 평행우주로의 이동이 바로 시간여행이 되는 것이 아닐까?

 

과학은 점점 발달하고, 세상에 대해서 조금씩 더 알아간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새로운 의문들이 생겨나고 있다. 시간은 사실 인간이 만들어낸 개념이라고 생각되었지만 지금은 어느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발명이 아니라 발견인 셈이다.

 

이해하지 못하는 시간으로의 여행은 아직 더 많은 수수께끼를 간직한 채 문을 열어두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문으로 사람들은 끊임없이 기웃거리고 있다. 언젠가는 안에 들어가 비밀을 볼 날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posted by 양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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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7. 4. 08:00 Story Doctor/Movie

 


시간여행을 소재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던 스토리가 있었을까. 일약 한 배우를 세계적 스타로 만들었던 영화가 있다. 바로 백투더퓨처. 이 영화는 1987년이라는 비교적 오래된 영화로서 3부작까지 만들어졌지만 아직도 두터운 매니아층이 형성되어 있는 영화다.

 

스토리는 간단하다. 한 마을에 사는 고등학생, 그리고 그 고등학생과 친한 엉뚱한 과학자. 그 과학자는 타임머신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사고로 과학자는 죽고, 고등학생은 과거로 가게 된다. 바로 자신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고등학생 시절이었을 때로. 이야기는 진행이 되어, 나약하기만 한 아버지를 지금의 어머니와 만나게 하기 위한 피눈물 나는 주인공의 노력이 벌어지고, 결국은 성공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과거의 괴짜 과학자도 만나 미래로 돌아오는 데 성공한다는 스토리다. 2편은 미래에 문제가 생겨 미래로 가서 사건을 해결하지만 그 때문에 과거가 바뀌어 있다는 설정이다. 그래서 다시 과거를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는 이야기이다. 3편은 2편의 말미에 생긴 사건으로 인해 먼 과거로 가게 되고, 역시 역경을 이기고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는 이야기로 비슷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뭐 이야기는 각설하고….

 

영화의 비주얼이 환상적이라느니, 오래된 영화임에도 그래픽이 괜찮다느니 하는 말은 빼고 핵심적인 시간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영화는 괴짜 박사를 통해 나름의 과학적인 시간여행에 근접한다. 방식의 근접이 아니라 시간을 이해하는 개념의 근접이다.

 

3편의 영화는 시간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다. 1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2편의 미래와 과거와 현재. 3편의 과거와 현재. 서로의 시간대는 일직선으로 연결되어 있어 행동, 사건 하나하나가 같은 시간대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그것이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사진에 보이던 식구가 사라지거나, 신문 기사가 바뀌거나 하는 형태로. 하지만 이 부분은 철저하게 비과학적이라고 보면 된다. 어차피 존재하는 것의 존재는 사라지지 않는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이야기는 2편에 나온다. 미래에 갔다가 현재로 돌아온 주인공은 세상이 바뀌어져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 어떻게 바뀌게 된 것일까? 더군다나 어머니는 자신이 가장 미워하는 사람의 아내가 되어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어디선가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잘못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바로 미래의 인물이 몰래 타임머신을 이용해 과거로 갔다는 것.. 그 사실을 알아챈 주인공은 다시 과거로 돌아가 역사를 바꾸려 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역사로. 여기서 과학자는 시간의 갈래를 설명한다. 즉 하나의 시간대에서 사건이 하나 바뀌면, 새로운 시간대로 갈라져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진다는 것. 그래서 과거를 바꾸기 위해서는 분기보다 더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는 설명이다. 시간대의 분리나 같은 시간, 다양한 시간대의 존재는 평행우주 이론에도 어울리는 설정이다.

 

이러한 과학적 설명을 들은 주인공은 다시 과거로 돌아가 역사를 제대로 바꾸어 놓는다는 이야기이다. 시간의 분리, 그리고 시간대의 이중 존재 등에 대해서는 한 번 생각해볼 만한 이론을 내놓는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하나의 스토리가 또 있다. 바로 시간의 이동뿐만 아니라 정신의 이동이기도 한 나비효과라는 영화가 바로 그 예이다.

 

과거를 넘나들면서 주인공은 사건들을 경험한다. 그리고 그것에 의해 나타나는 다른 결과와 다른 기억들은 그에게 혼란을 준다. 아니 그뿐만 아니라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도 혼란을 준다. 하지만 그런 여행이 가능하다면 분명 그와 같은 현상이 일어날 거라는 가설은 세워볼 수 있다. , 과학적으로 그것이 가능한가, 가능하지 않은가의 판단이 아닌,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전개가 이루어질까라는 설명은 된다는 말이다.

 

나비효과는 하나의 작은 원인이 후에 엄청나게 큰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이론이다. 물론 이론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이론을 시간에 빗대어 설명한 것이다. 아니 어떻게 보면 시간에 빗대어 설명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설명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나비효과의 여행을 시간여행이라고 설명하기는 좀 어려울 것이다. 어쩌면 정신여행이라고 이름 붙이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재미있는 사진을 몇 장 소개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았을 사진이다.

시간여행자의 사진이라고 소개된 사진으로 두 장이다. 

이들은 과연 누구일까? 정말 시간여행자일까? 

 

 

 

(위의 두 사진 중 밑의 사진은 찰리채플린의 영화 '서커스'에 나오는 장면이다.)

 
posted by 양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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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6. 22. 08:00 Story Doctor/Movie

 

 

여기에 야구 영화가 있다. 

시원한 타격전, 투수전이 등장하고 야구의 재미를 흠뻑 느낄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이 영화에는 야구 장면이 그리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 영화는 감동이 묻어나는 훌륭한 스포츠 영화이자 삶에 대한 영화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름하여 프로. 그것도 메이저리그.
이 이야기는 당시 만년 하위팀인 오클랜드의 이야기다. 

야구라는 게임이 가지는 메카니즘은 복잡하다. 룰북이 거의 사전 두께만큼 두껍기로도 유명하다.
언뜻 단순한 것 같지만 다양한 예외가 존재하고 또 변수들도 존재한다. 그런 상황에 모든 것을 컨트롤하고 관리해야만 한다. 하지만 이렇게 복잡한 게임도 결국 하나의 룰만이 지배하고 있다. 즉 승리해야 한다는 것. 이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프로에서 가치를 인정받는 근거이다.


주인공인 빌리(브래드 피트)가 단장인 오클랜드는 양키즈에게 플레이오프에서 지고 만다.
선수들 연봉에서도 거의 4배 차이가 나는 팀과의 경기에서 나름 선전했지만 오클랜드는 잊혀진다. 패자는 기억되지 않는 법이다.
빌리는 경제학을 전공한 피터를 영입머니볼 이론을 도입해 팀을 리빌딩한다. 당장 야구계는 반발한다. 머니볼 이론은 경제학에 기초한 이론이지만 정작 야구를 모르는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진 이론이다. 하지만 빌리는 뜻을 굽하지 않고 결국 팀을 다시 플레이오프에 올린다. 더군다나 과정에서 아메리칸리그 연승 기록도 갈아치운다.
팀은 승리하지 못했다. 하지만 빌리는 보스턴으로부터 거액의 단장 제의를 받지만 여전히 그는 오클랜드에 남아서 팀의 승리를 위해 애쓰고 있다.


 


이 영화에서 야구는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내가 보기에는 그랬다. 사실 야구하는 장면이 박진감있게 등장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 영화가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여기서 느껴지는 감동은 야구 경기에 대한 감동이 아니다. 그것은 다시 새로운 도전의 기회를 얻은 패배자라는 낙인찍힌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팀에는 한 물 간 선수들이 모인다. 문제아, 퇴물, 부상자 등 그야말로 오합지졸. 그런 그들을 패배자로 만든 것은 누구일까. 그들이 왜 패배자여야 하는 것일까. 그들에게 제대로 된 기회를 주기는 한 것일까. 영화는 빌리를 통해 질문을 던지고 그 해답을 찾는다.

대부분의 스포츠 영화가 그렇듯, 스포츠 자체에 감동이 있다고 믿는다. 맞다. 부정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그 감동을 만들어내는 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것이 더 클 수 있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감동 스토리보다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도전하는 과정이 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승리하지 않아도 도전하는 자에게 이미 패배라는 환경을 넘어설 힘을 갖게 하는 것이니까.


 


영화는 묘하게 정적을 좋아한다.
음악으로 뒤덮는 실수를 범하지 않는다. 그리고 가끔 들리는 음악도 잔잔하게 흐른다.

빌리의 마음을 대변하는 노래가 있다. 바로 빌리의 딸이 부르는 'The Show'.

영화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바로 이 노래에 들어있는지도 모른다.

승리로 대변하는 프로의 냉정한 세계.
돈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세계. 빌리는 그것을 거스른다. 돈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외치는 것 같다. 야구도 돈이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것이라고.

posted by 양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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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6. 2. 08:00 Story Doctor/Movie

 



시간여행은 늘 재미있는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그 상상을 현실화 시키는 것은 당연히 영상이다. 시간여행에 대한 딱딱하고 어려운 과학적 상상을 배제한다면 우리는 충분히 즐거운 상상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소개할 영화가 바로 그러한 즐거운 상상을 실현시켜준다.

 

영화 액설런트 어드벤처는 지금은 대스타가 되어있는 키아누 리브스의 어린 모습을 볼 수 있는 영화다. 이 영화는 전화박스모양의 타임머신(닥터후-영국 드라마에 등장하는 타임머신 겸 우주선-의 타디스가 연상되는)을 타고 과거를 오가며 역사적 유명인들을 현대로 불러온다. 이유는 단 하나, 역사 과제에서 낙제를 면하기 위해서다.

 

주인공들이 불러오는 인물은 그야말로 역사적으로 인정받는 위인들, 징기즈칸, 잔다르크, 나폴레옹, 베토벤, 소크라테스, 프로이트 등이다. 이런 역사적 위인들이 현대에 와서 얌전하게 자신들의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온통 사고치기에 바쁜 인물들, 그리고 이 인물들을 통제 못하는 주인공들의 좌충우돌 이야기가 벌어진다.
뭐 코미디 영화기에 이런 에피소드는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역사적 위인들에 대한 조롱도 재미있는 요소 중 하나다. 여자 꼬시기에 여념이 없는 소크라테스와 프로이트, 독단적인 성격으로 애들을 몰아내고 풀장의 미끄럼틀을 차지한 나폴레옹, 야만인으로 그려진 징기즈칸, 전자 오르간 연주에 여념이 없는 베토벤 등. 결국 이들을 모두 통제해 역사발표를 마무리하고 해피엔딩이 된다는 것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이 영화에 과학은 없다. 과거로 어떻게 가는지에 대한 대답도 없다. 미래에서 온 정체 불명의 인물이 두 주인공을 도와 과거로 보낸다. 이유도 황당하기 그지없다. 두 주인공이 미래에 하게 될 음악이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두 주인공이 낙제를 받으면 음악을 못하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미래에서 구원자가 온 것이었다 

과거와 미래의 얽힘은 종종 시간을 다루는 이야기에서 써먹는 방법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다지 진지하지 않다. 그저 장치일 뿐이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당위성을 만들어내기 위한 장치, 그것도 무척 허접하기 그지없다. 그래도 이 이야기가 즐거운 것은 진지할 필요 없이 마음껏 유쾌하게 웃다가 끝낼 수 있다는 점이다. 디스토피아적 미래도 없고, 과거의 사건이 현대에 영향을 주지도 않는다. 그저 즐기면 되는 것이다.

 

하긴 시간을 다루면서 나름 과학적인 것들을 다루려고 어줍잖게 시도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나는 그런 진지한 것 모른다'는 식이 더 나을 수도 있다. 괜히 진지한 시도가 자칫 과학을 우습게 보는 의도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걱정 없이 즐겁게 만든 이 영상에서는 시간이 가져다 주는 재미의 요소를 한껏 활용한다. 그것은 즉 역사, 그리고 역사에 남아 있는 인물에 대한 재미이기도 하다.

 

우리는 가끔 역사적인 인물들이 실제로 어땠을까 상상해보곤 한다. 역사책에 나와 있는 것과 같은 성격일까, 정말 훌륭한 사람일까 등등을. 이 영화는 결코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일반적인 상상을 조금 실현시켜준다. 그래서 시간 여행이 재미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번 더 심어주는 것이다.

 

즐겨라. 시간 여행은 결코 어렵지 않다. 그저 즐기면 된다. 그것은 어차피 상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니까.

posted by 양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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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2. 16. 08:00 Story Doctor/Entertainment

 

 

12시에 문을 열어 아침 7시까지 영업을 하는 식당이 있다.

메뉴는 청주, 맥주, 소주. 그리고 돼지고기 된장국이 전부.

하지만 손님이 원하는 메뉴는 가능하면 만들어 준다.

모두가 하루 일과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 쉬고 있을 시간이지만 이 식당에서는 여전히 다양한 사람들의 삶이 이어진다.

 

사람은 살면서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 나에게 주변 사람에게...

그 질문은 대답할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저 들어주거나 다시 곱씹어보는 것이 전부일 거다.

그래서인가...

우리 주변의 드라마를 보면 온통 질문과 사연이 혼재하고, 그것의 해결책을 찾아 분주하다. 

왜, 어떻게, 어디서, 누가, 무엇을 등등등... 그래서 다시 왜, 어떻게, 어디서, 누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등등.

정작 살면서 쉽게 대답할 수 없는 것들의 이유를 찾아 그 대답을 쏟아 내놓는다. 그 대답이 맞는지 맞지 않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듯이.

 

그런데 어디 우리 삶이 그런가...

우리 삶은 그저 대답 없이 흘러갈 뿐이다.

이유? 그런 것 모른다. 방법? 되돌아보면 다 부질없을 뿐이다.

염세주의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흘러가는 게 삶이고 인생이다.

우리가 믿었던 것들이 무너지기도 하고, 우리가 무시했던 것들이 기막힌 방법이 되어 우리의 뒤통수를 치는 것처럼 말이다.

 

이 식당에는 이유가 없다. 질문도 없다.

그저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숨결과 체온이 있다.

누군가를 떠나 보내고... 누군가와 사랑하고... 누군가와... 또 누군가와...

 

20여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는 않은 이 단순한 드라마가 이토록 내 가슴을 후벼파는 것은...

그 깊이 때문일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래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의 삶은 이유 보다는 그저 여운이기 때문에.

 

누가 우리의 삶이 가볍다 할 수 있을까.. 누가 우리들의 삶이 얕다고 할 수 있을까..

어느 누구나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이야기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유도 모른 채, 질문도 하지 않고.

그렇게 담담하게 심야식당에서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을 흘린다. 슬쩍 흘려 놓는다.

거창하지는 않지만 그 삶에는 따뜻함이 있다. 그래서 쉽게 고개를 돌리지 못한다.

게이바의 주인이 손발오그라드는 목소리로 말해도 시선을 돌릴 수가 없다.

그렇게 심야식당의 시간은 지나간다.

 

 

 

주인공은 코바야시 카오루. 일본의 중견 배우이며 알만한 작품으로 비밀이 있다.

히로스에 료코와 출연했던 영화로 아내와 딸이 교통사고를 당한 후 아내의 영혼이 딸의 몸에 들어가서 생기는 이야기다.

그리고 유명한 배우로는 오다기리 조가 비밀을 간직한 사내로 등장한다.

물론 일본 드라마를 종종 본다면 낯이 익은 배우들도 다수 등장한다.

현재는 시즌4까지 나왔고, 극장판도 개봉했다.

앞으로 더 이야기가 나올지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언제나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posted by 양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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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29. 08:30 Story Doctor/Entertainment

 

한 때 꽤 재미있게 보던 예능 프로그램 중 하나가 바로 '비정상회담'이었다.

 

이렇게 잘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우리말을 잘하는 외국인들이 나와서 토론을 펼친다. 그저 자신의 의견을 질문에 맞게 이야기 하고 마는 것과는 별개로 이들은 진짜 한국말로 자신들의 생각을 서로 비교하고 반론도 펼치며 토론을 한다. 이 부분이 미녀들의 수다와는 질적으로 다른 부분이다.

 

과거 미녀들의 수다에는 외모에 치우친 부분이 없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은 한국말이 상당히 서툴러 의사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아도 그냥 앉혀놓고 보는 경향이 있었고, 몇몇 똑똑한 사람들에 의해 의견이 주를 이루었다. 물론 미녀들의 수다에 나온 인물들도 모두 괜찮은 친구들이었지만 비정상회담처럼 그들이 토론을 주고 받을 수 있었을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비정상회담이라는 프로그램이 특별했고 독특했다.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해외의 사례들도 알게 되었고, 다양한 개성과 독특한 문화를 가진 재주 많은 그들을 알게 된 것은 행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점점 비정상회담을 보는 것이 힘들어진다.

애네스가 불륜설에 휘말려서도 아니고, 예능적 재미가 떨어져서도 아니며. 사회자들이 마음에 안 들어서도 아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비정상회담이 보기 힘들다.

그것은 그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사회, 대한민국 사회에 문제가 많기 때문이다.

비정상회담의 성격상 사회문제와 관련된 대화가 자주 등장한다.

 

청년 실업, 출산 문제, 복지 등등

그런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 곤혹스러워진다. 그들은 지금 한국의 상황을 얼마나 비웃을까. 얼마나 우스울까. 자국의 나라에서는 전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버젓이 일어난다. 이 상황이 얼마나 황당할까.

 

정당을 해산해버리고, 종북으로 몰아서 고발하고, 언론에 재갈을 물렸다. 인권이 바닥을 치고, 언론의 자유도는 급하락 했다.

 

그들은 한국이 안전하고, 인터넷 속도가 빠르다고 열광한다. 하지만 그것이 뭐가 그리 중요할까. 지금 한국의 상황은 벼랑으로 내몰리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래서 그들의 얼굴을 보는 것이 점점 힘들어진다.

그들이 비웃을 한국의 모습을 자꾸 떠올리게 된다.

나 또한 이런 한국의 모습이 짜증나고 옹졸하며, 천박하다고밖에 생각이 안 드니까.

 

해외에는 좋은 예들이 많다. 배워야 할 선진 기법이나 제도들도 많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가 배워오는 것은 모두 자본가를 위한 방법들, 기업을 위한 방법들, 가진 자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들, 없는 자들의 주머니를 털어내는 방법들 뿐이다. 미국의 수정헌법에는 관심도 없으며, 벨기에의 복지는 먼 나라 이야기다. 프랑스의 인구정책이 있는지도 모를 것이며, 독일의 유럽에서의 노력도 모를 것이다.

 

지금 우리 정부는 오히려 일본과 비슷할 정도로 고립되어 가고 있다. 오히려 일본과 양립하려고 그러는 건지도 모른다.

 

박근혜의 지지도가 떨어졌다고 한다. 30%대로 진입했다는 이이기가 나온다. 그래도 약 40% 정도는 나온다. 모두들 이것을 콘크리트 지지율이라고 한다. 나는 여전히 왜 지지를 하는지 이유를 모른다. 그들도 아마 왜 지지하는지 정확한 이유는 모를 것이다. 그저 막연하게 나올 대답들은 충분히 예상이 된다. 난 옛날부터 박근혜가 독도를 일본에 줘버려도 최소 30%의 지지율은 나올 거라고 장담한 적 있다. 이런 사회가 얼마나 우스꽝스럽게 비칠까. 비정상회담의 출연진들 눈에 비치는 대한민국의 모습은 얼마나 하찮을까. 그들 역시 분명 자국의 모습과 비교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이라는 나라가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할 그들의 모습을 상상하니 부끄러워 진다. 그래서 나는 비정상회담이 더욱 보기 힘들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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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멋쟁이 스티브 2016.03.01 14:31  Addr Edit/Del Reply

    저는 한국에서 살고있습니다.
    이곳 사람들 오해하고있어서, 한국이 이미 선진국이고
    인권은 상위권을 머무르고 있습니다.
    오히려 저가 사는 곳은 복지, 인권 모두 떨어집니다.
    당신은 넓은 호수에 헤엄치면서 옆에 더러운 우물을 부러워하는 생선입니까?

  2.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우리가 더 낫다고 안도하면 안 되겠죠.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죠.
    더러운 우물을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서도 노력해야 하고
    넓은 호수에서 헤엄친다고 그곳이 오염되지 않았다고 자화자찬할 수는 없죠.
    투정도 아니고 어리광도 아닙니다.
    배가 불러서 이야기하는 것도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것들의 이야기죠.
    님이 사시는 곳도 더 좋은 세상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곳도 더 좋은 세상으로 나아가야죠.

  3. 좋은 정보 잘보고 갑니다

2014. 12. 16. 08:30 Story Doctor/Movie

 

 

 

2016 6월이 되면 마블의 수퍼 히어로 영화 중 가장 기대작인 캡틴 아메리카3가 개봉한다. 그리고 그 작품의 제목은 무려 시빌 워(CIVIL WAR). 마블 코믹스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다면 모르지만 그래도 조금의 정보를 가지고 있다면(나처럼) 시빌 워가 마블 코믹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은 알 것이다. 어떻게 보면 시빌 워는 두 어벤져스 그룹의 대결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니까.

 

우선 기본적인 스토리를 보자.

미국 정부에서 수퍼 히어로를 등록해 정부 관리하에 공무원처럼 활용하는 법안이 제시된다. 이유는 초짜 히어로들이 사고를 바람에 큰 희생이 발생한 것이기도 하고, 원래부터 히어로들을 통제하고 싶어하는 정부의 바램이 그 사건을 계기로 드러난 것이기도 하다.

이 법안에 의해 수퍼 히어로는 등록을 해야 하고, 등록한 자만아 히어로로서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통제에 히어로들은 둘로 의견이 나뉜다.

찬성하는 쪽으로 아이언맨, 스파이더맨(후에 반대의견으로 돌아선다.), 미스 마블, 미스터 판타스틱, 행크 핌(앤트맨) 등이 나서게 되고, 반대하는 쪽으로는 캡틴 아메리카, 인비저블 우먼, 데어데블, 팔콘, 퍼니셔 등이다. 결국 이 두 세력은 서로 격렬하게 싸우게 된다. 결과는 영화의 결과나 코믹스의 결과에 대한 해답을 미리 알려줄 수도 있는 일이니 여기서는 이야기하지 않겠다. 직접 시빌 워 코믹스를 구해서 보는 것도 해답이 될 것이다.

 

 

이 엄청난 프로젝트에서 핵심은 물론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이다. 하지만 이 둘 못지 않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스파이더맨이다. 스파이더맨은 처음 아이언맨의 편에 서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다. 하지만 그 바람에 큰 고통을 겪게 되고, 결국에는 빌런들까지 고용해 과거 동료였던 히어로들을 잡아들이는 모습에 반발해 캡틴 아메리카쪽으로 가세하게 된다.

즉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의 양 측면을 모두 접한 스파이더맨은 둘의 모습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역할을 하게 되며, 중간자적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등장한다.

 

 

현재 스파이더맨의 판권은 소니가 쥐고 있다.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미스터 판타스틱과 인비저블 우먼이 속한 판타스틱4는 파라마운트가 가지고 있다. 현재 리부트를 기획 중이기도 하다. 소니는 스파이더맨의 리부트가 실패했지만 그렇다고 판권을 건넬 만큼 멍청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손을 잡고 크로스오버를 진행하기도 쉽지 않다. 디즈니와 마블이 스파이더맨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소니의 스파이더맨의 상품성을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만 가지고 이야기를 끌고 나가기에는 시빌 워라는 이야기의 규모와 상징성이 너무나 크다.

예상대로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지게 된다면 시빌 워는 어벤져스를 능가할 수도 있는 대작이 될 것이다. 그러나 주요 배역들이 빠져버리게 되면 왠지 허전한 시빌 워를 보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실망감은 사실 울트론에서 행크 핌(앤트맨)이 없는 것도 한 몫 한다. (원래 울트론은 행크 핌이 만들었다.)

 

 

아직은 2년이나 남았다고 이야기 하고 싶다. 하지만 영화 제작에서 2년이라는 시간은 금방 지나가는 시간이다. 이 모든 것들을 마블이 어떻게 해결할지 궁금하다. 과연 관객들이 원하는 것들을 들어줄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상업적인 한계를 극복해내지 못하고 결국 반쪽 짜리 시빌 워가 될 것인지. 그 결과는 앞으로 진행되는 프로젝트에 계속 관심을 갖게 만든다.

 

PS : 그래도 닥터 스트레인지가 등장한다는 것에 매우 환영의 박수를 보낸다. 정말 보고 싶은 캐릭터였는데….. 나중에 타노스와 붙으려면 그 정도는 있어야지. 기존의 어벤져스로는 상대가 안 될 테니까.

 

posted by 양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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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11. 11:31 기가 막힌 세상 이야기



신은미 콘서트 황산 테러에 대한 신문 기사 댓글들이 놀랍다.

벌써부터 댓글 부대의 동원인 것인지....

아니면 일베들의 난입인지....

아니면 애국보수들의 집합인지는 모르지만 상당수 신은미를 비난하는 글들이 많이 보인다.

오히려 황산 폭탄테러를 가한 학생을 옹호하기도 한다. 

왜 이지경이 됐을까....

왜 세상은 이렇게 점점 양극화 되어갈까....

믿고자 하는 신념이 있으면 그 신념을 위해서 어떠한 행위도 용서되는 것일까. 

그 행위로 누군가 피해를 본다 하더라도 불가피한 경우라며 넘어가는 것일까.

신은미의 콘서트 내용을 나는 모른다. 

일각에서는 종북이라고 하고 일각에서는 그저 북한 관강한 내용이라고 한다.

모르겠다.


난 북한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 시대 마지막 전제우의 왕권 국가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현대 정치게념이 먹히지 않는다고 여기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통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국가 경쟁력과 경제적 측면이 민족적 측면보다는 더 강하다.

하지만 북한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그들을 욕하지 않고 비난하지 않는다고 해서 종북으로 몰아세우고 테러까지 자행하는 상황이 용서받을 수는 없다. 

북한에 대해서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면 안 되는 것인가? 그게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인가? 그들에게는 긍정적인 면은 하나도 없고 모두 부정적인 것들 뿐인가? 

왠지 이 느낌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면 절대로 안 되는 지금의 분위기와 닮았다. 절대로 비판을 해서는 안 되는 존재의 신성불가참같이 여겨진다. 

모두 비정상이다. 


개인적 생각에까지 이념과 정치의 굴레를 씌워야 하는지 모르겠다. 신은미씨의 경우는 먼저 보수쪽에서 그 굴레를 씌웠다. 그 점을 다시 생각해 보자.

개인의 생각을 말하는 것 조차도 누구는 테러라고 말한다. 

하지만 생각에 대한 발언은 듣는 청자로부터 걸러질 수 있다.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을 통해서 해석될 수도 있다. 받아들여질 수도 있고,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정도는 누구나 가능해야 하지 않은가? 누군가의 발언을 듣고 그대로 따를 정도로 자신의 가치관조차 없는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그들의 문제다. 가치관조차 세우지 못한 자신들의 안이함과 불성실함이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상대방에게 물리적 폭행을 행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그저 튀고 싶어하는 일베 출신의 학생이 저지른 일탈 치고는 그 무게가 이제까지와는 다르다. 그래서 걱정이다. 

또 멀마나 이 행동이 포장되고 추앙받을지.... 그래서 또 얼마나 많은 것들을 부추키게 될지.....


점점 세상이 무서워진다. 

자신과 다르면 악이 되어버리는 세상. 다름을 인정하지 안흔 세상.... 

우리의 지성은 시간이 갈 수록 뒷걸음질 치고 있다.


posted by 양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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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맞는 말입니다.

    근데 신은미씨는 북한에서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준거 같네요. -_-;;;;;

    • 양철호 2014.12.11 12:29 신고  Addr Edit/Del

      저는 그것에 대한 판단은 충분히 개인적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인들의 발언도 개인적인 판단을 근거로 표로 심판하지 않나요. 신은미씨의 발언에 대해서도 충분히 스스로들 판단할 지성들은 갖추지 않았나요? 그걸 갖추지 못했다면 그것 자체가 문제겠죠. 이걸 문제라고 주장하며 폭력으로 대응한다는 것은 대응의 방법이 문제라는 것이죠.

  2. 말이 되네요. 그것도 못한다면 그저 웃기는 짜장이죠.

    • 양철호 2014.12.11 13:00 신고  Addr Edit/Del

      자신의 주장에 얼마나 자신이 있고, 얼마나 남들을 설득해 낼 근거를 갖추고 있는지 확인하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어지 되었든 제가 쓴 별 것 아닌 글에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

  3. ㅍㅍ 2014.12.12 16:24  Addr Edit/Del Reply

    자신과 다르면 악이 되어버리는 세상이라...

    불과 수십년전에 전쟁을 치르고 휴전중인 나라인 북한을 찬양하는게 단순히 다른 의견이 되버린 세상이 너무 무섭네요
    우리의 지성은 시간이 갈수록 뒷걸음질 치고 있네요

    • 양철호 2014.12.12 17:57 신고  Addr Edit/Del

      북한을 찬양하는 것과 북한에 대한 의견을 말하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최근 보수는 노골적으로 종북 논리를 앞장세웠죠. 그 이면에는 북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더라도 현재의 정권이나 권력에 맞서면 북한의 지령이니 하며 몰아 종북으로 치부한다는 점입니다. 아직도 현재 한반도는 남북이 대치되어 있는 상태이니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좋다는 것이죠. 그런 이유로 남발되는 종북 논리에 사실 지친 것도 있습니다. 신은미씨가 북한을 찬양했는지 아닌 지는 관계 기관의 조사로도 충분히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직접 물리력을 행사했다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지요. 들리는 얘기로는 보수측이 신은미시가 북한을 지상낙월이라고 말했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신은미씨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여기서 저는 누구의 말이 맞다고 우기는 것이 아니라 발언의 진위는 충분히 밝힐 수 있는 능력이 사회적으로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폭력에 의해서가 아니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