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양철호
스토리 파고들기, 문학, 영화를 비롯한 온갖 미디어, 그리고 세상 사는 이야기까지 다양하고 재미있는 스토리들을 찾아 소개하고, 분석하고, 뜯어고치는 곳. 세상을 향해 일갈하기도 하고, 가슴 따뜻한 이야기와도 만날 수 있는 곳.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Notice

2017. 10. 20. 08:00 Story Doctor/Movie

실화를 가장한 허구

 

영화 블레어 윗치가 개봉했을 때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다. 실제로 관객들은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라 촬영된 테잎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영화에 등장하는 숲에 찾아가는 사람들도 생겼다. 인터넷과 신문에는 마녀 전설을 간직한 숲에 대한 기사와 정보가 개제되었다. 이쯤 되면 사람들이 속는 것도 당연하다. 이 모든 과정은 영화 개봉 1년 전부터 계획되었다고 전해졌다.


 



블레이 윗치는 철저하게 계획된 영화다. 실화도 아니고 실제로 그런 전설을 가진 숲도 없었다. 단지 철저하게 만들어진 정보를 미리 알리고, 계획을 통해 실화처럼 꾸미고 영화도 실화처럼 만든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이 전설이나 설화가 탄생하게 되는 과정처럼 보여진다. 현대 전설의 탄생 말이다.

 

실화처럼 영화를 보이게 하기 위해 블레어 위치가 쓴 전략은 다큐멘터리 기법이다. 즉 카메라를 들고 영화속 등장인물이 돌아가며 자신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찍는다. 이런 기법은 다큐멘터리이며 조작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더군다나 직접 들고 찍어 흔들리는 핸드핼드기법 화면은 사실감을 더 해주는 효과가 있다. 대표적으로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도입부 전투 장면이 있다.

 

영화 '블레어 윗치'는 마녀들의 전설이 있는 숲으로 사람들이 취재를 위해 들어가고, 그 곳에서 이상한 일을 겪게 된다는 이야기다. 숲으로 들어갔던 사람들이 모두 실종되고, 그 이후에 그들이 촬영한 테잎만 발견된다는 이야기로 전개된다. 화면에는 숲 속의 수상한 존재에 대해서 정체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분위기만 조성될 뿐이다. 그래도 이 영화는 성공했다. 화면에서 보여지는 영상이 실화는 아닐지라도 사실처럼 보여졌기 때문이다. 즉 그래픽으로 꾸미지도 않았고, 촬영이 멋있지도 않지만 우리가 흔히 보는 홈비디오를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이후에 이런 기법으로 촬영된 영화들이 종종 등장한다. 물론 실망감을 안긴 '블레어 윗치2' 를 비롯해, 최근 대박을 터트린 파라노말 액티비티까지. 노르웨이 영화 트롤 헌터나 호주 영화 터널’, 한국 영화인 목두기 비디오’, ‘폐가도 모두 이런 작품의 계보에 들어간다. 이런 작품을 가짜 다큐라는 이름의 페이크 다큐멘터리로 부른다.

 

하지만 이런 영화라고 해서 모두 감정이입을 하게 되고, 사실감 있고, 관객들이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파라노말 액티비티' 말고는 딱히 성공했다고 할만한 영화가 없을 정도로 이외로 치밀하게 구성되어져야 하는 영화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유는 다름아닌 현실성이다. 화면을 흔든다고 해서 현실성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즉 현실에 있을 법한 상황과 환경이 영화에 핵심이다. 그러나 충격적인 장면만을 생각해 극한 상황이나 이상환 상황에 처하게 만들어 놓고 시작하는 페이크 다큐는 이미 현실성을 잃어버리고 만다. '블레어 윗치'가 성공한 이유는 새로운 시도였기 때문이다. 그 이후 속편이 실패한 이유는 새로운 시도가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계기이다. 즉 현실성의 부족이 실패로 이어진 것이다. 반면 비슷한 설정이지만 '파라노말 액티비티'가 성공한 이유는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 이야기 구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슷한 설정이 성공하고 나면 재탕, 삼탕 우려먹는 영화들의 등장으로 인해 초반의 참신함은 사라져버리기 일쑤다. 그리고 이런 페이크 다큐 설정의 영화들의 양산은 결국 질적인 저하까지 초래하게 되었다. 

 

지금은 이런 페이크다큐를 믿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허구이지만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 같은 상황은 관객을 공포로 몰아 넣는다. 결국은 관객이 경험할 수도 있을 법한 이야기 자체에 극한의 공포를 느끼는 것이다.

posted by 양철호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17. 9. 15. 08:00 Story Doctor/Movie

실화, 그 단순함의 공포

 

영화 엑소시스트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이 끔찍한 엑소시즘에 대한 영화가 실화라는 사실에 적잖이 놀라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그만큼 영상이 충격적이라는 데 있다. 이 영화의 실제 이야기는 남자 아이를 엑소시즘했던 세 명의 바티칸 신부 이야기이다. 그 세 명이 신부 중 한 명이 기록했던 일기가 세상에 알려지게 도면서 그것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영화 ‘엑소시스트’인 것이다.


 


영화는 공포를 넘어 괴기함으로 일관되어 있다. 영화가 촬영되는 도중에 영화 관계자나 가족 등 영화와 관련된 사람 아홉 명이 사망한 사건은 유명하다. 심지어 영화 속에서 이었다. 이는 영화를 다시 한 번 괴기함으로 몰고 가는 역할을 한다. 더군다나 배에 쓰여지는 도와달라는 글씨나 못을 토하고, 십자가로 자해를 하는 장면 등은 실제로 목격된 내용이라고 하니 그 당사자는 이루 말 못할 충격을 겪었을 법 하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들은 의외로 엑소시즘에 관련된 영화가 많다. 얼마 전 개봉했던 더 라이트-악마는 있다;도 바티칸에 엑소시틈 강의를 들으러 왔던 사제의 실제 기록이 영화화 된 것이라 한다. 그 기록에는 실제 못을 토해내는 장면에 충격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 외에도 엑소시즘 오르 에밀리 로즈아미티빌(1981년작)’ 같은 영화들도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아미티빌은 실제 저택에서 벌어진 일가족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영화로 사건 자체가 워낙 충격적이기도 했다. 살인을 저지른 가족의 장남은 악마가 시켜 살인을 저질렀다고 말해 이슈가 되기도 했었다. 그 후로 아미티빌 저택은 세계 3대 흉가로 이름을 떨치고 있기도 하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공포영화가 갖는 장점은 사실성이다. 사실 이 영화들이 다른 공포영화에 비해 더 무서운 점은 없다. 단지 실제 일어났고, 앞으로도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 하나가 사람들을 더욱 큰 공포감에 빠져들게 만드는 것이다.


, 실화는 감정이입이 쉽다는 점에서 관객들의 심리를 파고들 수 있는 충분한 요소를 이미 갖추고 있다. 사람들은 실화라는 이야기 속에서 실제 사건의 전개를 알고 싶어하고, 또 그런 것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고 싶어한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와 빗대어 상상을 하거나 비교해보곤 하는 것이다.


실화라는 이름은 언제나 한 걸음 앞서 있다. 감동을 주어도 허구보다는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고, 공포를 주더라도 더 큰 공포를 주며, 웃음을 주더라도 더 큰 웃음을 줄 수 있다. 바로 우리들이 이야기가 될 수도 있으며, 우리 이웃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posted by 양철호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더 라이트도 실화였군요..-_-;;; 이래서 제가 공포영화를 못 보는 것 아니겠습니까. ㅠㅠ

    • 양철호 2011.09.21 13:17 신고  Addr Edit/Del

      제가 공포물 팬이라 좋아한답니다. 그런데 실화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아무래도 다가오는 느낌이 달라지더군요. ^^

2017. 8. 11. 08:00 Story Doctor/Movie

공포의 미학

 

공포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공포 그 자체이다. 대부분의 감독들은 이런 신념을 가지고 가장 무서운 장면들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피가 튀고, 머리가 잘리고, 관절을 비틀어대기도 하면서 어떻게 해야 가장 무서운지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하지만 정작 놓치는 것은 공포는 장면이 주는 순간이 아니라 전체의 분위기에서 나온다는 것을 쉽게 잊는다.


 


 

조지 로메로 감독이 최초의 좀비 영화인 살아난 시체들의 밤을 만들었을 때, 영화를 본 관객들은 상상 이상의 공포에 감염이 되어버렸다. 사실 영화에 등장하는 좀비는 티가 너무 나는 분장에 흐느적거리며 느릿느릿 걸어가는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이 모습이 얼마나 우스웠으면 후일 새벽의 황당한 저주라는 영화로 패러디 되었을까. 하지만 영화의 분위기는 결코 우습지 않았다. 죽지않고 끊임없이 살아나 밀려오는 좀비들은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장벽처럼 느껴졌다. 사방에서 조여오는 좀비의 등장에 호러팬들은 열광했다. 로메로 좀비 시리즈의 탄생이었다.


 

스필버그의 영화 죠스’는 상어와 인간의 싸움을 그린다. 상어는 실존하는 생명체이다. 또한 바다의 폭군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두려운 장면은 성어에 의해 사람이 찢기는 장면이 아니다. 음산한 존 윌리엄스의 음악과 함께 상어가 어디서 등장할지 모르는 분위기에 있는 것이다. 

 

현재, 어떻게 귀신을 무섭게 등장시키고, 어떻게 사람을 더욱 잔인하게 죽이는지에 치중하는 공포영화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이유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결국 가장 핵심적인 공포의 요소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거나 생각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공포영화에서 가장 공포감을 자아내는 충격적인 요소는 무엇일까? 분위기? 음악? 영상? 아니다. 그것은 바로 실화, 즉 사실성이다. 리얼리티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논픽션이라는 점이 더욱 공포감을 자아내는 것이다. 바로 우리 옆에서, 언젠가 나에게 찾아올 수도 있는 일이라는 점은 영화 속의 영상을 현실로 바라보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그럼 이제부터 현실과 허구, 그 경계에 있는 공포영화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posted by 양철호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17. 8. 4. 08:00 Story Doctor/Movie

 


 

시간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그저 흘러가는 하나의 흐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는 아주 작은 의미라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결국 핵심은 시간은 지나간다는 것이다. 가장 소중한 순간이라도, 아니면 헛되이 보내는 순간이라도 말이다.

 

스콧 피츠체랄드의 원작 소설을 영상화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시간의 흐름이 서로 다른 두 사람의 만남을 통해 사랑, 그리고 소중한 순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분명한 것은 이는 시간에 얽힌 공상과학적인 영화는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드라마틱하고 애절하며, 감성적인 영상이다.


벤자민 버튼은 80대의 노인의 모습으로 태어난다. 그리고 그는 하루하루 살면서 점점 나이가 젊어진다. 그런 그에게 데이지는 너무나도 순수하고 아름다운 소녀였다. 60대의 나이가 되어 있는 벤자민과 6살의 데이지의 만남은 어쩌면 운명적으로 엇갈리는 시간을 이미 예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서로의 감정들을 뒤로하고 벤자민과 데이지는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다가 결국 둘의 나이가 비슷해지는 시기에 다시 만나게 된다. 이 한 순간을 위해 그토록 오랜 세월을 기다렸다는 듯이 두 사람은 뜨거운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그것도 한 순간, 벤자민은 다시 데이지의 옆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젠 너무 어려진 벤자민의 모습을 발견한 나이가 들어버린 데이지는 그의 최후를 지켜본다.



 

두 사람의 시간은 반대로 흐른다. 결국 둘 사이의 접점은 정말 일순간에 불과하다. 서로 나란히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엇갈리는 운명에서 교차점을 찾기는 어렵다. 그 순간에 둘의 사랑은 그 누구보다도 뜨거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시간이 그들에게 가르쳐 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무리 짧은 순간이라 하더라도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랑은 아무리 순간이라 하더라도 진실했기에 그토록 오랫동안 잔상을 남기고 기억되는 것이다.

이 작품이 가지는 독특한 시간에 대한 설정은, 오히려 사랑에 대한 감정을 더욱 부각시키는 데 효과적이다. 더군다나 인간이 닥친 현실이나 처한 상황에 대한 이유가 아니라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라는 점에 더욱 힘이 실린다. 그들의 사랑은 서로 짧게 끝날 것을 당연히 알지만 결코 식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 하나의 작품이 또 있다.

선로 위에서 나 돌아갈래!”를 외치던 한 남자를 기억하는가? 그 남자는 그 외침 이후로 과거로 거슬러간다. 선로를 따라 거꾸로 가는 기차의 모습, 그리고 거슬러 올라간 이후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 바로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이다.

이 작품은 시간을 재해석한 것은 아니다. 그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한 남자의 삶이 어떠했는지 무덤덤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왜 그가 영화의 맨 처음 시작에 그렇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가 어떤 계기를 겪어 그런 성격을 가지게 되었는지 영화는 아무런 장치 없이 보여주기만 한다. 그리고 해석은 오로지 관객의 몫이다.



 

여기서 시간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타임머신 같은 존재가 아니다. 그저 그가 겪어온 주마등 같은 기억의 파편일 뿐이다. 그러나 그 파편이 한국 현대사에서 너무나 강렬한 순간순간에 존재한다는 것이 그를 바꾼 이유일 것이다.

이 영화는 역사가, 그리고 사회가, 한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순수하고 깨끗했던 한 남자가, 험난한 현대사 속에서 변화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결국 역사라는 시간의 쌓임이 주는 무게감을 고스란히 느낄 수밖에 없다. 나 또한 결코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제껏 시간이 가지는 개념, 그리고 시간이 표현되는 방법들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우리는 시간을 잘 이해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아직 시간은 우리가 이해하기에 너무나도 복잡하고 오묘한 세계임에는 분명하다. 또한 꽤 재미있는 소재임에도 분명하다. 과학도, 판타지도 가능한 것이 바로 시간의 세계이다.

시간이 주는 그 무한한 잠재력과 가능성, 그리고 기발함에 좀 더 시선을 던진다면, 더 재미있고 의미있는 스토리들이 나타날 것이다. 이제 시계를 들여다보고 초침이 가는 것을 눈 여겨보자. 어느 순간 그 초침이 멈추게 되면 전개될 세상이 어떨지 상상해보자. 모든 것의 시작은 바로 상상에서 시작되니까.

posted by 양철호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17. 7. 18. 08:00 Story Doctor/Movie

두 편의 독특한 영화가 있다. 그 하나는 트라이앵글이라는 버뮤다 삼각해역과 관련된 영화이고, 또 다른 하나는 타임 크리암이라는 시간여행에 관련된 영화다.

 

이 두 영화의 공통점은 같은 장면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이유는 바로 시간의 뒤엉킴이다. 한 번 지나간 시간을 주인공은 다시 겪는다. 마치 같은 꿈을 반복해서 꾸는 것처럼. 그러나 다른 점은 같은 꿈을 꿀 때마다 겪는 일들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그것은 반복된 시간의 경험이 주는 선물일까? 아니면 악몽일까? 영화는 독특한 스토리를 가지고 시간을 뒤엉켜 관객을 혼란 속으로 몰아넣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간단한 줄거리를 살펴보자.


 

트라이앵글은 일단의 인물들이 요트를 타고 바다로 여행을 떠난다. 일종의 버뮤다 삼각해역이라고 불리는 지역으로의 여행이었다. 그러나 폭풍을 만나 사고가 나게 되고 요트는 조난을 당해 바다에 표류한다. 그때 아무도 없는 무인의 거대한 유람선을 발견하고 주인공들은 구조를 기대하며 유람선에 오른다. 그러나 유람선에서 기다리는 것은 살육이었다. 정체불명의 인물이 그들을 하나씩 죽이려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주인공은 그 살인마가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즉 다른 시간에 존재하는 자신인 것이다.

 

여주인공은 그렇게 반복된 살육에 내몰려 사람들을 죽여나간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그녀는 자신을 죽이려는 자신을 죽인다. 그리고 새로운 시간이 다시 시작된다. 하지만 그것을 보고 있는 또 다른 자신이 존재하고 있었고, 그렇게 시간의 뒤엉킴 속에 인물이 뒤엉키고 만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구조를 가지고 있는 이 영화의 결말은 결국 여주인공이 모두 죽이고 바다로 뛰어들어 육지로 돌아오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끝날 것 같던 그녀의 악몽은 다시 요트 여행을 떠나는 곳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즉 새로운 시작인 것이다.

 

이 영화에서 암시되는 것은 바로 죽음이다. 즉 시간의 뒤엉킴으로 인해 사건이 생기는 것인지, 아니면 주인공들의 죽음으로 인해 시간의 뒤엉킴이 생기는 것인지 묘한 여운을 남긴다는 점이다.

 

시간의 초월과, 다른 시간대의 사람이 동시간에 존재하는 모순, 그리고 되풀이되는 시간을 따라 걷다 보면 마치 뫼비우스의 띠 속에 갇혀 있는 기분이 든다. 영원히 처음과 끝을 알 수 없는 되풀이되는 반복의 시간 말이다.



그에 비해 타임 크라임은 '트라이앵글'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인다. ‘트라이앵글이 죽음과 시간과의 혼란이라면 타임 크라임은 오로지 시간에 의해 벌어지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주인공은 휴식을 취하던 중, 숲에서 이상한 것을 목격한다. 숲으로 향한 주인공은 갑작스럽게 자신을 습격하는 괴한과 맞닥뜨리게 되고, 괴한을 피해 간신히 도주한다. 그가 도착한 곳은 어느 과학 연구소. 그 곳에서는 시간의 여행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었다.

 

주인공은 연구소 직원의 말에 따라 시간 여행 실험에 참여해 과거로 돌아가게 된다. 쉽게 해결될 것 같았던 문제는 같은 시간대에 같은 인물이 두 명 존재한다는 모순에 의해 하나씩 꼬이기 시작한다.

 

주인공이 과거로 오게 될 때 겪었던 일들을 하나씩 재연하면서 과거의 주인공을 꾀어내 공격을 한다. 완전히 되풀이되는 시간인 셈이다. 과거의 자신을 죽여야 되는 주인공은 그러나 실패하게 된다. 문제는 더욱 복잡해서 과거의 주인공도 과거로 가버리고 말았다는 점이다. 여기서 한 가지 더 꼬이는 것은 주인공이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는 점이다. 이제 같은 시간대에 주인공이 세 명이 존재하게 된다.

 

세 명의 뒤엉킴은 영화를 끝 모를 지하 깊숙한 수렁으로 끌고 들어간다. 해결될 것만 같았던 사건들이 다시 엉키고, 어떻게 풀어져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문제는 이 영화에는 치명적인 오류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앞에서 밝힌 트라이앵글은 오류를 피해가기 위해 죽음이라고 하는 존재를 집어넣어 은근슬쩍 넘어가려는 시도를 했다. 뭐 성공적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타임 크라임은 그런 꼼수를 쓰지는 않았다. 그러나 너무 시간의 뒤엉킴에 집착한 나머지 실수를 하는데 그것은 모든 사건의 발단이 바로 과거로 간 첫번째 주인공에 의해 벌어진다는 점이다.

 

주인공을 숫자로 구분해 보면 맨 처음 습격을 당한 주인공을 1이라고 하고, 습격을 당한 후에 과거로 가게 된 주인공을 2라고 하자. 즉 주인공을 숲으로 꾀어내어야만 모든 사건이 벌어진다. 그런데 꾀어냄을 당해야만 과거로 갈 수 있는 셈이다. 꾀어내지 않으면 과거로 갈 이유도 없이 잘 쉬고 있을 주인공인 것이다.

 

즉 어떠한 원인에 의해 주인공은 과거로 가지만 그 원인이 미래에 있다는 역설이 존재하게 된다. 인과관계의 시간률이 흐트러진 것이다.

 

영화는 이 시간의 흐트러짐을 바로잡는데 버거워 보인다. 그래서 스토리가, 시나리오가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다시 한 번 증명된다. 물론 돈만 쏟아 부은 그렇고 그런 영화보다는 훨씬 잘 만들어진 저예산 영화임은 인정한다. 그러나 결정적인 모순에 의한 마이너스를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시간은 도대체 무엇일까? 사람들이 만들어낸 개념이 아닌 사람이 발견한 개념, 그럼 시간은 도대체 어떤 법칙을 가지는 것일까? 절대적일 것만 같았던 빛이 블랙홀에 의해 빨려들어가듯, 시간도 무언가 질량을 가지는 물질은 아닐까? 그 물질에 의해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질량을 가진 물질의 뒤틀림은 충분히 있을 수 있기에, 시간의 뒤틀림도 언젠가는 우리들 눈 앞에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의 하나가 되지 않을까?

 

모순된 시간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하고, 복잡하다. 그리고 해법도 쉽지 않다. 뫼비우스의 띠에서 처음과 끝을 구분하고, 겉과 속을 구분할 수 없듯이 말이다.

posted by 양철호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17. 7. 5. 08:00 Story Doctor/Movie

 



이제 조금은 과학적인 이야기를 해볼 차례이다.

 

부친 살해 패러독스는 과거로의 여행이 가능하지 않다는 논리적 근거를 제시한다. 즉 과거로 가서 부친을 살해한다고 해도 내가 속해있는 미래에 나는 이미 존재하기 때문에 미래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하지만 상대성이론을 보면 빛보다 빠른 속도라면 과거로 갈 수 있으며, 빛과 같은 속도면 미래로 갈 수도 있다. 빛과 같은 속도로 물체가 이동하게 되면 물리적 시간이 0이 되어 버린다는 것이 상대성이론이다. 그리고 빛보다 빠른 속도를 내면 물리적 속도고 마이너스가 되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문제는 빛보다 빠르게 이동할 수가 없다는 것을 상대성이론은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뭐 각설하고, 이론적 근거들을 살펴보면 결국 어떠한 장치든 무엇을 이용하든 과거로 온다고 해서 미래가 바뀌지는 않는다는 점에서는 결론이 같다. , 전에 살펴본 백투더퓨처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시간대가 생겨나는 것이다. 여기에 재미있는 영화가 하나 있다. 바로 SF 액션 영화인 터미네이터가 바로 그것이다.

 

터미네이터는 먼 미래, 기계와 인간의 싸움이 한창일 때, 기계가 인간의 리더를 살해하기 위해 터미네이터를 과거로 보낸다는 설정이다. 물론 인간도 과거로 전사를 보내 리더를 보호하고자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이론적으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 과거로 온 터미네이터가 리더를 살해했다고 하자. 그럼 미래에 리더는 사라져버리고 기계가 승리하는 세계가 될까?

 

아니라는 것이다. , 어차피 인간 측 리더가 존재하는 세상은 있다. 그리고 그 세상에서 터미네이터를 보낸 것이다. 미션을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미래는 변하지 않는다. 단 미래에 인간 저항군이 없는 미래가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하면, 기계가 지배하는 미래도 있고, 인간과 기계가 싸우고 있는 미래도 있고, 기계가 아닌 인간이 평화롭게 사는 미래도 존재한다. 그리고 영화는 그것을 다루는 근거로 2편의 감독판에서 평화로운 미래를 잠깐 보여주기도 한다.

 

영화속에서 보여지는 주인공은 기계와 맞서 싸울 운명을 타고난 것뿐이다. 그리고 운 나쁘게 기계들에게 선택된 주인공일 뿐이다. 다른 세계의 주인공은 평화롭게 살고 있거나, 아니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되었을 수도 있다.

 

결국 상대성 이론처럼 시간이라고 하는 것도 절대적인 것이 아닌 상대적인 것이라는 설명이 된다. 서로 다른 세계에 적용되는 각각의 시간. 그 시간들은 각각 생명력을 가지지만 다른 시간대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만약 시간 여행을 하게 된다면 내가 존재하는 시간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시간대의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게 되는 것이 아닐까? 즉 평행우주로의 이동이 바로 시간여행이 되는 것이 아닐까?

 

과학은 점점 발달하고, 세상에 대해서 조금씩 더 알아간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새로운 의문들이 생겨나고 있다. 시간은 사실 인간이 만들어낸 개념이라고 생각되었지만 지금은 어느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발명이 아니라 발견인 셈이다.

 

이해하지 못하는 시간으로의 여행은 아직 더 많은 수수께끼를 간직한 채 문을 열어두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문으로 사람들은 끊임없이 기웃거리고 있다. 언젠가는 안에 들어가 비밀을 볼 날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posted by 양철호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17. 7. 4. 08:00 Story Doctor/Movie

 


시간여행을 소재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던 스토리가 있었을까. 일약 한 배우를 세계적 스타로 만들었던 영화가 있다. 바로 백투더퓨처. 이 영화는 1987년이라는 비교적 오래된 영화로서 3부작까지 만들어졌지만 아직도 두터운 매니아층이 형성되어 있는 영화다.

 

스토리는 간단하다. 한 마을에 사는 고등학생, 그리고 그 고등학생과 친한 엉뚱한 과학자. 그 과학자는 타임머신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사고로 과학자는 죽고, 고등학생은 과거로 가게 된다. 바로 자신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고등학생 시절이었을 때로. 이야기는 진행이 되어, 나약하기만 한 아버지를 지금의 어머니와 만나게 하기 위한 피눈물 나는 주인공의 노력이 벌어지고, 결국은 성공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과거의 괴짜 과학자도 만나 미래로 돌아오는 데 성공한다는 스토리다. 2편은 미래에 문제가 생겨 미래로 가서 사건을 해결하지만 그 때문에 과거가 바뀌어 있다는 설정이다. 그래서 다시 과거를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는 이야기이다. 3편은 2편의 말미에 생긴 사건으로 인해 먼 과거로 가게 되고, 역시 역경을 이기고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는 이야기로 비슷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뭐 이야기는 각설하고….

 

영화의 비주얼이 환상적이라느니, 오래된 영화임에도 그래픽이 괜찮다느니 하는 말은 빼고 핵심적인 시간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영화는 괴짜 박사를 통해 나름의 과학적인 시간여행에 근접한다. 방식의 근접이 아니라 시간을 이해하는 개념의 근접이다.

 

3편의 영화는 시간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다. 1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2편의 미래와 과거와 현재. 3편의 과거와 현재. 서로의 시간대는 일직선으로 연결되어 있어 행동, 사건 하나하나가 같은 시간대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그것이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사진에 보이던 식구가 사라지거나, 신문 기사가 바뀌거나 하는 형태로. 하지만 이 부분은 철저하게 비과학적이라고 보면 된다. 어차피 존재하는 것의 존재는 사라지지 않는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이야기는 2편에 나온다. 미래에 갔다가 현재로 돌아온 주인공은 세상이 바뀌어져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 어떻게 바뀌게 된 것일까? 더군다나 어머니는 자신이 가장 미워하는 사람의 아내가 되어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어디선가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잘못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바로 미래의 인물이 몰래 타임머신을 이용해 과거로 갔다는 것.. 그 사실을 알아챈 주인공은 다시 과거로 돌아가 역사를 바꾸려 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역사로. 여기서 과학자는 시간의 갈래를 설명한다. 즉 하나의 시간대에서 사건이 하나 바뀌면, 새로운 시간대로 갈라져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진다는 것. 그래서 과거를 바꾸기 위해서는 분기보다 더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는 설명이다. 시간대의 분리나 같은 시간, 다양한 시간대의 존재는 평행우주 이론에도 어울리는 설정이다.

 

이러한 과학적 설명을 들은 주인공은 다시 과거로 돌아가 역사를 제대로 바꾸어 놓는다는 이야기이다. 시간의 분리, 그리고 시간대의 이중 존재 등에 대해서는 한 번 생각해볼 만한 이론을 내놓는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하나의 스토리가 또 있다. 바로 시간의 이동뿐만 아니라 정신의 이동이기도 한 나비효과라는 영화가 바로 그 예이다.

 

과거를 넘나들면서 주인공은 사건들을 경험한다. 그리고 그것에 의해 나타나는 다른 결과와 다른 기억들은 그에게 혼란을 준다. 아니 그뿐만 아니라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도 혼란을 준다. 하지만 그런 여행이 가능하다면 분명 그와 같은 현상이 일어날 거라는 가설은 세워볼 수 있다. , 과학적으로 그것이 가능한가, 가능하지 않은가의 판단이 아닌,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전개가 이루어질까라는 설명은 된다는 말이다.

 

나비효과는 하나의 작은 원인이 후에 엄청나게 큰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이론이다. 물론 이론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이론을 시간에 빗대어 설명한 것이다. 아니 어떻게 보면 시간에 빗대어 설명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설명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나비효과의 여행을 시간여행이라고 설명하기는 좀 어려울 것이다. 어쩌면 정신여행이라고 이름 붙이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재미있는 사진을 몇 장 소개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았을 사진이다.

시간여행자의 사진이라고 소개된 사진으로 두 장이다. 

이들은 과연 누구일까? 정말 시간여행자일까? 

 

 

 

(위의 두 사진 중 밑의 사진은 찰리채플린의 영화 '서커스'에 나오는 장면이다.)

 
posted by 양철호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17. 6. 22. 08:00 Story Doctor/Movie

 

 

여기에 야구 영화가 있다. 

시원한 타격전, 투수전이 등장하고 야구의 재미를 흠뻑 느낄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이 영화에는 야구 장면이 그리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 영화는 감동이 묻어나는 훌륭한 스포츠 영화이자 삶에 대한 영화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름하여 프로. 그것도 메이저리그.
이 이야기는 당시 만년 하위팀인 오클랜드의 이야기다. 

야구라는 게임이 가지는 메카니즘은 복잡하다. 룰북이 거의 사전 두께만큼 두껍기로도 유명하다.
언뜻 단순한 것 같지만 다양한 예외가 존재하고 또 변수들도 존재한다. 그런 상황에 모든 것을 컨트롤하고 관리해야만 한다. 하지만 이렇게 복잡한 게임도 결국 하나의 룰만이 지배하고 있다. 즉 승리해야 한다는 것. 이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프로에서 가치를 인정받는 근거이다.


주인공인 빌리(브래드 피트)가 단장인 오클랜드는 양키즈에게 플레이오프에서 지고 만다.
선수들 연봉에서도 거의 4배 차이가 나는 팀과의 경기에서 나름 선전했지만 오클랜드는 잊혀진다. 패자는 기억되지 않는 법이다.
빌리는 경제학을 전공한 피터를 영입머니볼 이론을 도입해 팀을 리빌딩한다. 당장 야구계는 반발한다. 머니볼 이론은 경제학에 기초한 이론이지만 정작 야구를 모르는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진 이론이다. 하지만 빌리는 뜻을 굽하지 않고 결국 팀을 다시 플레이오프에 올린다. 더군다나 과정에서 아메리칸리그 연승 기록도 갈아치운다.
팀은 승리하지 못했다. 하지만 빌리는 보스턴으로부터 거액의 단장 제의를 받지만 여전히 그는 오클랜드에 남아서 팀의 승리를 위해 애쓰고 있다.


 


이 영화에서 야구는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내가 보기에는 그랬다. 사실 야구하는 장면이 박진감있게 등장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 영화가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여기서 느껴지는 감동은 야구 경기에 대한 감동이 아니다. 그것은 다시 새로운 도전의 기회를 얻은 패배자라는 낙인찍힌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팀에는 한 물 간 선수들이 모인다. 문제아, 퇴물, 부상자 등 그야말로 오합지졸. 그런 그들을 패배자로 만든 것은 누구일까. 그들이 왜 패배자여야 하는 것일까. 그들에게 제대로 된 기회를 주기는 한 것일까. 영화는 빌리를 통해 질문을 던지고 그 해답을 찾는다.

대부분의 스포츠 영화가 그렇듯, 스포츠 자체에 감동이 있다고 믿는다. 맞다. 부정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그 감동을 만들어내는 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것이 더 클 수 있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감동 스토리보다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도전하는 과정이 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승리하지 않아도 도전하는 자에게 이미 패배라는 환경을 넘어설 힘을 갖게 하는 것이니까.


 


영화는 묘하게 정적을 좋아한다.
음악으로 뒤덮는 실수를 범하지 않는다. 그리고 가끔 들리는 음악도 잔잔하게 흐른다.

빌리의 마음을 대변하는 노래가 있다. 바로 빌리의 딸이 부르는 'The Show'.

영화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바로 이 노래에 들어있는지도 모른다.

승리로 대변하는 프로의 냉정한 세계.
돈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세계. 빌리는 그것을 거스른다. 돈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외치는 것 같다. 야구도 돈이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것이라고.

posted by 양철호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17. 6. 2. 08:00 Story Doctor/Movie

 



시간여행은 늘 재미있는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그 상상을 현실화 시키는 것은 당연히 영상이다. 시간여행에 대한 딱딱하고 어려운 과학적 상상을 배제한다면 우리는 충분히 즐거운 상상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소개할 영화가 바로 그러한 즐거운 상상을 실현시켜준다.

 

영화 액설런트 어드벤처는 지금은 대스타가 되어있는 키아누 리브스의 어린 모습을 볼 수 있는 영화다. 이 영화는 전화박스모양의 타임머신(닥터후-영국 드라마에 등장하는 타임머신 겸 우주선-의 타디스가 연상되는)을 타고 과거를 오가며 역사적 유명인들을 현대로 불러온다. 이유는 단 하나, 역사 과제에서 낙제를 면하기 위해서다.

 

주인공들이 불러오는 인물은 그야말로 역사적으로 인정받는 위인들, 징기즈칸, 잔다르크, 나폴레옹, 베토벤, 소크라테스, 프로이트 등이다. 이런 역사적 위인들이 현대에 와서 얌전하게 자신들의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온통 사고치기에 바쁜 인물들, 그리고 이 인물들을 통제 못하는 주인공들의 좌충우돌 이야기가 벌어진다.
뭐 코미디 영화기에 이런 에피소드는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역사적 위인들에 대한 조롱도 재미있는 요소 중 하나다. 여자 꼬시기에 여념이 없는 소크라테스와 프로이트, 독단적인 성격으로 애들을 몰아내고 풀장의 미끄럼틀을 차지한 나폴레옹, 야만인으로 그려진 징기즈칸, 전자 오르간 연주에 여념이 없는 베토벤 등. 결국 이들을 모두 통제해 역사발표를 마무리하고 해피엔딩이 된다는 것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이 영화에 과학은 없다. 과거로 어떻게 가는지에 대한 대답도 없다. 미래에서 온 정체 불명의 인물이 두 주인공을 도와 과거로 보낸다. 이유도 황당하기 그지없다. 두 주인공이 미래에 하게 될 음악이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두 주인공이 낙제를 받으면 음악을 못하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미래에서 구원자가 온 것이었다 

과거와 미래의 얽힘은 종종 시간을 다루는 이야기에서 써먹는 방법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다지 진지하지 않다. 그저 장치일 뿐이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당위성을 만들어내기 위한 장치, 그것도 무척 허접하기 그지없다. 그래도 이 이야기가 즐거운 것은 진지할 필요 없이 마음껏 유쾌하게 웃다가 끝낼 수 있다는 점이다. 디스토피아적 미래도 없고, 과거의 사건이 현대에 영향을 주지도 않는다. 그저 즐기면 되는 것이다.

 

하긴 시간을 다루면서 나름 과학적인 것들을 다루려고 어줍잖게 시도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나는 그런 진지한 것 모른다'는 식이 더 나을 수도 있다. 괜히 진지한 시도가 자칫 과학을 우습게 보는 의도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걱정 없이 즐겁게 만든 이 영상에서는 시간이 가져다 주는 재미의 요소를 한껏 활용한다. 그것은 즉 역사, 그리고 역사에 남아 있는 인물에 대한 재미이기도 하다.

 

우리는 가끔 역사적인 인물들이 실제로 어땠을까 상상해보곤 한다. 역사책에 나와 있는 것과 같은 성격일까, 정말 훌륭한 사람일까 등등을. 이 영화는 결코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일반적인 상상을 조금 실현시켜준다. 그래서 시간 여행이 재미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번 더 심어주는 것이다.

 

즐겨라. 시간 여행은 결코 어렵지 않다. 그저 즐기면 된다. 그것은 어차피 상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니까.

posted by 양철호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17. 2. 16. 08:00 Story Doctor/Entertainment

 

 

12시에 문을 열어 아침 7시까지 영업을 하는 식당이 있다.

메뉴는 청주, 맥주, 소주. 그리고 돼지고기 된장국이 전부.

하지만 손님이 원하는 메뉴는 가능하면 만들어 준다.

모두가 하루 일과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 쉬고 있을 시간이지만 이 식당에서는 여전히 다양한 사람들의 삶이 이어진다.

 

사람은 살면서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 나에게 주변 사람에게...

그 질문은 대답할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저 들어주거나 다시 곱씹어보는 것이 전부일 거다.

그래서인가...

우리 주변의 드라마를 보면 온통 질문과 사연이 혼재하고, 그것의 해결책을 찾아 분주하다. 

왜, 어떻게, 어디서, 누가, 무엇을 등등등... 그래서 다시 왜, 어떻게, 어디서, 누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등등.

정작 살면서 쉽게 대답할 수 없는 것들의 이유를 찾아 그 대답을 쏟아 내놓는다. 그 대답이 맞는지 맞지 않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듯이.

 

그런데 어디 우리 삶이 그런가...

우리 삶은 그저 대답 없이 흘러갈 뿐이다.

이유? 그런 것 모른다. 방법? 되돌아보면 다 부질없을 뿐이다.

염세주의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흘러가는 게 삶이고 인생이다.

우리가 믿었던 것들이 무너지기도 하고, 우리가 무시했던 것들이 기막힌 방법이 되어 우리의 뒤통수를 치는 것처럼 말이다.

 

이 식당에는 이유가 없다. 질문도 없다.

그저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숨결과 체온이 있다.

누군가를 떠나 보내고... 누군가와 사랑하고... 누군가와... 또 누군가와...

 

20여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는 않은 이 단순한 드라마가 이토록 내 가슴을 후벼파는 것은...

그 깊이 때문일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래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의 삶은 이유 보다는 그저 여운이기 때문에.

 

누가 우리의 삶이 가볍다 할 수 있을까.. 누가 우리들의 삶이 얕다고 할 수 있을까..

어느 누구나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이야기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유도 모른 채, 질문도 하지 않고.

그렇게 담담하게 심야식당에서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을 흘린다. 슬쩍 흘려 놓는다.

거창하지는 않지만 그 삶에는 따뜻함이 있다. 그래서 쉽게 고개를 돌리지 못한다.

게이바의 주인이 손발오그라드는 목소리로 말해도 시선을 돌릴 수가 없다.

그렇게 심야식당의 시간은 지나간다.

 

 

 

주인공은 코바야시 카오루. 일본의 중견 배우이며 알만한 작품으로 비밀이 있다.

히로스에 료코와 출연했던 영화로 아내와 딸이 교통사고를 당한 후 아내의 영혼이 딸의 몸에 들어가서 생기는 이야기다.

그리고 유명한 배우로는 오다기리 조가 비밀을 간직한 사내로 등장한다.

물론 일본 드라마를 종종 본다면 낯이 익은 배우들도 다수 등장한다.

현재는 시즌4까지 나왔고, 극장판도 개봉했다.

앞으로 더 이야기가 나올지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언제나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posted by 양철호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