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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호
스토리 파고들기, 문학, 영화를 비롯한 온갖 미디어, 그리고 세상 사는 이야기까지 다양하고 재미있는 스토리들을 찾아 소개하고, 분석하고, 뜯어고치는 곳. 세상을 향해 일갈하기도 하고, 가슴 따뜻한 이야기와도 만날 수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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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ice

2018. 2. 28. 08:00 Story Doctor/Book & Comics



다시 천안함이 뜨겁다. 
평창올림픽 폐막식에 북한에서 김영철이 오는 것과 연관해 자유한국당은 전면 저지에 나섰다. 
바로 김영철이 천안함 폭침의 원흉이라는 것이다. 
이에 다시 책 한 권을 들춰본다. 
바로 '과학의 양심, 천안함을 추적한다'이다. 

2010년 3월 천안함이 서해헤서 바다에 가라앉는다.
정부는 즉각 북한의 어뢰에 의한 공격에 의해서라고 단정짓는다. 하지만 이 부분에 수많은 의문들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회는 경직되어 있었고, 다른 의견을 친북, 종북이라는 이름으로 몰아세운다. 그것이 그 당시의 분위기고, 지금도 보수는 여전히 같은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다. 자신과 다르면 철저하게 배척하는 자들. 자신들에게 반대하면 빨갱이라고 외치는 자들.  

버지니아 대학교의 이승헌 교수는 물리학자이다. 과학자의 양심으로 그는 천안함을 추적한다. 그의 책에는 단 하나의 사실만이 담겨 있다.
그는 천안함의 침몰 원인을 알지 못한다. 아니 모른다고 단정 짓는다. 다만 합조단에서 발표하는 근거가 과학적이로, 물리학적으로 잘못되었다고 지적한다. 실험이 잘못 되었거나, 아니면 실험 결과를 조작했다는 것이다.

단순한 논리다. 합조단의 발표는 수없이 바뀌었고, 근거도 빈약했다. 국방부의 발표도 계속 말을 바꾸어가면서 이어졌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한 가지의 사실만을 주장한 이승헌 교수와 몇몇 과학자들의 외침은 묻혔다. 보수 언론에서 철저하게 외면했고, 왜곡했으며 무시했다. 불이익을 준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도대체 왜 결과를 왜곡해서 발표를 했을까. 이승헌 교수는 이것에 대해서 단정하지 않는다. 그는 과학적 시각만을 주장하는 진짜 학자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과학자는 왠지 대부분 죽은 것 같다. 국책 사업에 매달려 돈을 타내기 위해서는 결국 입을 다물고 자신의 양심을 팔아야 하는 지경에 온 것이다. 이게 현재 한국의 대학, 그리고 그 대학에 다니는 지성이라고 할 사람들의 수준이 되어버렸다. 이것이 평균이 되어버린 것이다.

MB정부는 북한에 정상회담을 하며 천안함 사과를 받아내고 싶어했다. 그러나 북한은 거절했고, 이는 국제적인 망신으로 이어졌다. 천안함 침몰의 근원은 철저하게 다시 밝혀야 한다. 그 원인을 밝혀내고, 그것을 왜곡한 자들에 대한 심판도 함께 내려야 한다. 대한민국 보수 언론의 추악함과 양심을 팔아버린 학자들의 비이성을 몰아내야 한다.

재미있는 건, 이 책이 당시 매년 선정하는 오늘의 책에 선정되었다가 취소되었다는 의혹이 일었다는 것이다. 이 정도로 그 당시 한국 사회는 뒤로 후퇴했다. 그리고 지금도 앞으로 나아가는 데 힘에 버겁다. 이 정도로 한국 사회는 여전히 경직되어 있다. 
도대체 자유한국당과 그 일당들이 믿는 진실이 뭘까? 아니 그들이 믿는 진실이라는 게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것은 모조리 왜곡이라고 외치는 것은 아닐까? 
그러면서 애국이랍시고 떠들어대는 것은 아닐까? 

이제 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4개월 정도. 
지금이 기회다. 지금이 천안함에 대한 진실을 다시 조명해 볼 수 있는 기회다.
정치권력이 바뀌었다. 그것 하나 바뀌었지만 바뀐 건 바뀐 거다.
이제 입 다물고 있던 학자들도 제대로 입좀 열어봐라.
학자의 양심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조용히 지내는 국내의 학자들 말이다. 


posted by 양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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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권 바뀌면 제일 먼저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런지..ㅡㅡ;

  2. 개인적으로 한국의 미슷헤리로 남을까 걱정도 됩니다.

2017. 12. 1. 08:00 Story Doctor/Movie

현실과 허구의 묘한 경계

 

기사가 한 건이 있었다. 그 기사에는 태국 지역 한 마을의 화재사건을 보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단순한 보도가 아니었다. 그 마을에 있는 한 여자에 대한 소개가 주된 내용이었다. 그 여자는 마을에서 마녀로 몰렸고, 불길한 재앙을 불러온다고 믿어져 왔다는 것이다. 그녀는 늘 불행을 예언했고, 그 예언은 틀리지 않았으며, 일반 사람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런 그녀가 큰 화재사건을 예고했고, 그 예고대로 화재가 일어나 수많은 사람들이 사망하자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결국 젊은 나이게 세상을 떠나게 되고,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의 유일하게 온전한 장기를 기증했는데 그것이 바로 눈의 각막이었다고 한다.


 

 

이 기사는 태국의 공포영화 디 아이의 모티브가 된 신문 기사다. 태국의 어느 지역 신문에 실린 내용이라고 전해진다. 감독은 이 여자의 각막을 이식 받은 사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를 상상했다고 전해진다. 영화는 전형적인 공포물의 방식을 따른다. 하지만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는 설정이 가져다 주는 공포는 의외로 크다. 영상은 누군가를 깜짝깜짝 놀라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흐릿한 실루엣에서부터 시작해 그 형체를 구체화시켜가는 정체 모를 것에 대한 불안감을 극대화시킨다. 태국의 공포영화가 갖는 두려움은 일본 호러 영화와는 또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영화는 허구다. 죽은 여자의 각막을 이식 받은 사람에 대한 기사는 어디에도 없고, 소식도 모른다. 결국 영화의 모든 내용은 감독의 상상에 의한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실재했던 사건을 그 출발점으로 하고 있다. 실화는 아닐지라도 오히려 더 섬뜩한 기분이 드는 것은 감독의 상상력이 실재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으로 관객들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른 작품으로 베니싱을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어둠에 의해 사람들이 사라진다는 다소 황당한 설정을 가진 영화다. 그런데 문제는 이 현상이 미스테리한 현상 중 하나로서 실제로 있었던 사건이라는 점이다. 가장 유명한 것으로 두 가지 사건이 회자되는데 하나는 미국의 로어노크 섬의 사건이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로어노크로 이주한 사람들이 감쪽같이 사라지게 되는데, 어디로 이주한 흔적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또한 물건, 옷가지 등도 모두 그대로 놔두고 사라졌다. 마을 근처 나무에 의미를 알 수 없는 크로아톤이라는 단어만 새겨진 채 말이다.


 


두 번째 사건으로 캐나다 로키 산맥의 에스키모 마을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한 사냥꾼이 그 마을에 들어섰을 때 모든 것은 정상으로 보였다. 다만 사람이 한 명도 없었을 뿐이다. 음식도 그대로였고, 뜨개질하던 옷도 중간에 그대로였으며, 사냥 도구도 그대로였다. 썰매도 제자리에 있었으며 도무지 사람들이 어디론가 이주한 흔적이라는 찾을 수 없었다. 개들은 모두 굶어 죽어 있었다고 한다.

 

나중에 베니싱 현상에 대해서는 좀 더 자세하게 다루기로 하고, 어쨌든 이러한 현상들이 있었고, 이런 현상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베니싱이다. 공포적 완성도에 대한 것 보다는 어둠이 가져다 주는 분위기, 그리고 그 어둠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심리에 초점이 맞춰진 영화이다. 실화는 아니지만 실존했던 사건을 가지고 상상을 더해서 만들어진 영화에 대한 공포감은 어쩌면 실화라고 알려진 것보다 더 클지도 모른다. 그것이 바로 영화가 만들어내는 상상의 힘이기 때문이다.

 

 

posted by 양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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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0. 20. 08:00 Story Doctor/Movie

실화를 가장한 허구

 

영화 블레어 윗치가 개봉했을 때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다. 실제로 관객들은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라 촬영된 테잎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영화에 등장하는 숲에 찾아가는 사람들도 생겼다. 인터넷과 신문에는 마녀 전설을 간직한 숲에 대한 기사와 정보가 개제되었다. 이쯤 되면 사람들이 속는 것도 당연하다. 이 모든 과정은 영화 개봉 1년 전부터 계획되었다고 전해졌다.


 



블레이 윗치는 철저하게 계획된 영화다. 실화도 아니고 실제로 그런 전설을 가진 숲도 없었다. 단지 철저하게 만들어진 정보를 미리 알리고, 계획을 통해 실화처럼 꾸미고 영화도 실화처럼 만든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이 전설이나 설화가 탄생하게 되는 과정처럼 보여진다. 현대 전설의 탄생 말이다.

 

실화처럼 영화를 보이게 하기 위해 블레어 위치가 쓴 전략은 다큐멘터리 기법이다. 즉 카메라를 들고 영화속 등장인물이 돌아가며 자신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찍는다. 이런 기법은 다큐멘터리이며 조작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더군다나 직접 들고 찍어 흔들리는 핸드핼드기법 화면은 사실감을 더 해주는 효과가 있다. 대표적으로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도입부 전투 장면이 있다.

 

영화 '블레어 윗치'는 마녀들의 전설이 있는 숲으로 사람들이 취재를 위해 들어가고, 그 곳에서 이상한 일을 겪게 된다는 이야기다. 숲으로 들어갔던 사람들이 모두 실종되고, 그 이후에 그들이 촬영한 테잎만 발견된다는 이야기로 전개된다. 화면에는 숲 속의 수상한 존재에 대해서 정체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분위기만 조성될 뿐이다. 그래도 이 영화는 성공했다. 화면에서 보여지는 영상이 실화는 아닐지라도 사실처럼 보여졌기 때문이다. 즉 그래픽으로 꾸미지도 않았고, 촬영이 멋있지도 않지만 우리가 흔히 보는 홈비디오를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이후에 이런 기법으로 촬영된 영화들이 종종 등장한다. 물론 실망감을 안긴 '블레어 윗치2' 를 비롯해, 최근 대박을 터트린 파라노말 액티비티까지. 노르웨이 영화 트롤 헌터나 호주 영화 터널’, 한국 영화인 목두기 비디오’, ‘폐가도 모두 이런 작품의 계보에 들어간다. 이런 작품을 가짜 다큐라는 이름의 페이크 다큐멘터리로 부른다.

 

하지만 이런 영화라고 해서 모두 감정이입을 하게 되고, 사실감 있고, 관객들이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파라노말 액티비티' 말고는 딱히 성공했다고 할만한 영화가 없을 정도로 이외로 치밀하게 구성되어져야 하는 영화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유는 다름아닌 현실성이다. 화면을 흔든다고 해서 현실성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즉 현실에 있을 법한 상황과 환경이 영화에 핵심이다. 그러나 충격적인 장면만을 생각해 극한 상황이나 이상환 상황에 처하게 만들어 놓고 시작하는 페이크 다큐는 이미 현실성을 잃어버리고 만다. '블레어 윗치'가 성공한 이유는 새로운 시도였기 때문이다. 그 이후 속편이 실패한 이유는 새로운 시도가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계기이다. 즉 현실성의 부족이 실패로 이어진 것이다. 반면 비슷한 설정이지만 '파라노말 액티비티'가 성공한 이유는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 이야기 구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슷한 설정이 성공하고 나면 재탕, 삼탕 우려먹는 영화들의 등장으로 인해 초반의 참신함은 사라져버리기 일쑤다. 그리고 이런 페이크 다큐 설정의 영화들의 양산은 결국 질적인 저하까지 초래하게 되었다. 

 

지금은 이런 페이크다큐를 믿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허구이지만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 같은 상황은 관객을 공포로 몰아 넣는다. 결국은 관객이 경험할 수도 있을 법한 이야기 자체에 극한의 공포를 느끼는 것이다.

posted by 양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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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9. 15. 08:00 Story Doctor/Movie

실화, 그 단순함의 공포

 

영화 엑소시스트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이 끔찍한 엑소시즘에 대한 영화가 실화라는 사실에 적잖이 놀라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그만큼 영상이 충격적이라는 데 있다. 이 영화의 실제 이야기는 남자 아이를 엑소시즘했던 세 명의 바티칸 신부 이야기이다. 그 세 명이 신부 중 한 명이 기록했던 일기가 세상에 알려지게 도면서 그것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영화 ‘엑소시스트’인 것이다.


 


영화는 공포를 넘어 괴기함으로 일관되어 있다. 영화가 촬영되는 도중에 영화 관계자나 가족 등 영화와 관련된 사람 아홉 명이 사망한 사건은 유명하다. 심지어 영화 속에서 이었다. 이는 영화를 다시 한 번 괴기함으로 몰고 가는 역할을 한다. 더군다나 배에 쓰여지는 도와달라는 글씨나 못을 토하고, 십자가로 자해를 하는 장면 등은 실제로 목격된 내용이라고 하니 그 당사자는 이루 말 못할 충격을 겪었을 법 하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들은 의외로 엑소시즘에 관련된 영화가 많다. 얼마 전 개봉했던 더 라이트-악마는 있다;도 바티칸에 엑소시틈 강의를 들으러 왔던 사제의 실제 기록이 영화화 된 것이라 한다. 그 기록에는 실제 못을 토해내는 장면에 충격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 외에도 엑소시즘 오르 에밀리 로즈아미티빌(1981년작)’ 같은 영화들도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아미티빌은 실제 저택에서 벌어진 일가족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영화로 사건 자체가 워낙 충격적이기도 했다. 살인을 저지른 가족의 장남은 악마가 시켜 살인을 저질렀다고 말해 이슈가 되기도 했었다. 그 후로 아미티빌 저택은 세계 3대 흉가로 이름을 떨치고 있기도 하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공포영화가 갖는 장점은 사실성이다. 사실 이 영화들이 다른 공포영화에 비해 더 무서운 점은 없다. 단지 실제 일어났고, 앞으로도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 하나가 사람들을 더욱 큰 공포감에 빠져들게 만드는 것이다.


, 실화는 감정이입이 쉽다는 점에서 관객들의 심리를 파고들 수 있는 충분한 요소를 이미 갖추고 있다. 사람들은 실화라는 이야기 속에서 실제 사건의 전개를 알고 싶어하고, 또 그런 것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고 싶어한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와 빗대어 상상을 하거나 비교해보곤 하는 것이다.


실화라는 이름은 언제나 한 걸음 앞서 있다. 감동을 주어도 허구보다는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고, 공포를 주더라도 더 큰 공포를 주며, 웃음을 주더라도 더 큰 웃음을 줄 수 있다. 바로 우리들이 이야기가 될 수도 있으며, 우리 이웃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posted by 양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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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더 라이트도 실화였군요..-_-;;; 이래서 제가 공포영화를 못 보는 것 아니겠습니까. ㅠㅠ

    • 양철호 2011.09.21 13:17 신고  Addr Edit/Del

      제가 공포물 팬이라 좋아한답니다. 그런데 실화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아무래도 다가오는 느낌이 달라지더군요. ^^

2017. 8. 11. 08:00 Story Doctor/Movie

공포의 미학

 

공포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공포 그 자체이다. 대부분의 감독들은 이런 신념을 가지고 가장 무서운 장면들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피가 튀고, 머리가 잘리고, 관절을 비틀어대기도 하면서 어떻게 해야 가장 무서운지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하지만 정작 놓치는 것은 공포는 장면이 주는 순간이 아니라 전체의 분위기에서 나온다는 것을 쉽게 잊는다.


 


 

조지 로메로 감독이 최초의 좀비 영화인 살아난 시체들의 밤을 만들었을 때, 영화를 본 관객들은 상상 이상의 공포에 감염이 되어버렸다. 사실 영화에 등장하는 좀비는 티가 너무 나는 분장에 흐느적거리며 느릿느릿 걸어가는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이 모습이 얼마나 우스웠으면 후일 새벽의 황당한 저주라는 영화로 패러디 되었을까. 하지만 영화의 분위기는 결코 우습지 않았다. 죽지않고 끊임없이 살아나 밀려오는 좀비들은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장벽처럼 느껴졌다. 사방에서 조여오는 좀비의 등장에 호러팬들은 열광했다. 로메로 좀비 시리즈의 탄생이었다.


 

스필버그의 영화 죠스’는 상어와 인간의 싸움을 그린다. 상어는 실존하는 생명체이다. 또한 바다의 폭군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두려운 장면은 성어에 의해 사람이 찢기는 장면이 아니다. 음산한 존 윌리엄스의 음악과 함께 상어가 어디서 등장할지 모르는 분위기에 있는 것이다. 

 

현재, 어떻게 귀신을 무섭게 등장시키고, 어떻게 사람을 더욱 잔인하게 죽이는지에 치중하는 공포영화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이유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결국 가장 핵심적인 공포의 요소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거나 생각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공포영화에서 가장 공포감을 자아내는 충격적인 요소는 무엇일까? 분위기? 음악? 영상? 아니다. 그것은 바로 실화, 즉 사실성이다. 리얼리티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논픽션이라는 점이 더욱 공포감을 자아내는 것이다. 바로 우리 옆에서, 언젠가 나에게 찾아올 수도 있는 일이라는 점은 영화 속의 영상을 현실로 바라보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그럼 이제부터 현실과 허구, 그 경계에 있는 공포영화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posted by 양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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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6. 26. 08:00 Story Doctor/Movie

 

제대로 된 미스테리 영화가 나오는 건 아닌지 설레며 봤다.

그리고 결론은 왠지 어설퍼 보이는 것은 나만의 착각인지 묻고 싶다.

설정은 괜찮았다.

해방 직후의 경성의 분위기. 그리고 그 안에서 위폐 동판을 둘러싼 살인.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남자의 복수 등.

그럴싸한 것들을 이것저것 버무려 엮어 놓았지만 설정과 배경 등을 동원해 화려하게 꾸민 것 치고는 이야기의 전개가 작아져버렸다.

조금 더 음모적인 것들을 집어 넣을 수도 있었고, 조금 더 규모를 키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철저하게 개인적인 것으로 축소시키면서 이야기의 규모가 작아져버렸다. 그만큼 흥미로 후반부로 전개되면서 급격하게 떨어지게 되었다.

 

고수, 김주혁, 박성웅, 문성근 등 화려한 출연진이 등장한다.

사건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과 법정 장면이 오가며 전개된다.

초반부는 많은 것들을 감추며 시작한다.

그리고 조금씩 드러내며 미스테리는 시작한다.

문제는 감춘다는 것이 너무 티를 낸다는 것이다.

잘 만들어진 미스테리는 감춘다는 티를 내지 말아야 한다.

감추려면 그것은 당사자의 의도가 있어야 한다. 즉 캐릭터의 의도이지 제작자나 작가의 의도가 아니다.

하지만 이 석조저택 살인사건에서는 너무 티나게 감독의 의도로 많은 것들이 감춰진다.

감춰지는 것이 많다 보니 결국은 드러나게 될 것들의 의외성이 떨어지는 결과가 반작용으로 생긴다.

범인도 쉽게 드러나고, 사건이 어떻게 전개된 것인지도 쉬게 추측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제목인 석조저택 살인사건에 대해서도 조금은 난해하다.

석조저택이라는 장소의 중요성이 무척 강조되는 듯 하지만 정작 영화의 내용에는 그다지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야기의 핵심을 비켜가고, 관객들의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려는 듯한 의도로 읽혀 거북했다. 그 의도가 너무 인위적이라는 것이 문제다.

관객들을 작품의 게임 속으로 끌어들이는 부분이 결국은 약했다는 것이다.

감정적인 부분들이 과다하게 들어간 요소가 크다.

미스테리는 게임 자체에 핵심이 있고, 관객들이 게임을 직접 참여해서 푸는 느낌이 강해야 한다.

그래야 성공한다. 아니 최소한 그래야 재미가 있다.

배우들의 연기력이 받침되어서 그나마 볼만한 작품으로 완성된 것이 위안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이런 작품을 볼때마다 원작을 읽고 싶어진다.

원작의 어느 부분을 놓치고, 어느 부분에 매달렸는지 궁금해지는 것이다.

언제쯤 읽어볼 수 있을까.

posted by 양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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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 16. 08:00 Story Doctor/Movie

 

다시 댄 브라운의 소설 한 편이 영화로 등장했다.

다빈치 코드, 천사와 악마를 이은 세번째로 기억한다.

인페르노.

단체가 묘사한 지옥을 이번 작품에서 꺼내 놓는다.

단체는 왠지 낯설지 않은 인물이다.

이미 단체의 모자이크 살인, 단체의 빛의 살인이란 줄리오 레오니의 소설을 접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댄 브라운의 소설은 흥미진진한 스토리의 긴박감과 함께 기호의 상징을 풀어 놓는다는 데 있다.

다빈치 코드에서 기호에 대한 의미와 상징들이 이야기 되고,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심지어 그 성공이 얼마나 어마어마했는디 실제 다빈치 코드를 찾아내기 위한 다큐멘터리까지 제작되었다고 하니 말이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댄 브라운의 소설은 그 이후 조금씩 힘이 빠져나가고 있다.

사건의 긴박감과 상징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다빈치 코드, 천사와 악마를 지나 로스트 심벌, 인페르노까지 오게 되면 상징이 굳이 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점들이 생긴다.

사건을 일으키는 범인들은 상식이 결여된 인물처럼 느껴지고, 마치 어떤 사명감 보다는 상징에 집착하는 인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댄 브라운이 상징, 기호학이라는 장르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하는 요소로까지 발전하게 되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인지했으나 주인공인 랭던의 특수성을 포기할 수 없기에 이렇게까지 오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특히 인페르노는 갑작스러운 사건의 전개를 통해 기억상실과 미스테리를 섞으려는 시도가 보이나 이런 시도는 사실 오래된 수법이다. 그리고 그리 탁월하지도 못했다.

 

나는 댄 브라운에게 움베르트 에코와 비슷한 수준의 기호학이나 언어학적 수사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이야기의 전개가 그럴듯한 상황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인페르노가 왜 흥행에 실패했는지, 왜 소설을 읽으면서도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었는지를 기억나게 해준다.

 

다빈치 코드의 엄청난 성공이 오히려 댄 브라운에게 독이었을까.

사람들은 발전하는 그의 모습을 기대하면서 작품을 접한다.

하지만 다빈치 코드만큼의 작품은 앞으로는 나오기 어려울 것 같다.

posted by 양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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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2. 13. 07:30 믿거나 말거나

 

박근혜는(이제껏 예의상 대통령이라 불렀지만 탄핵되었으니 이름만....) 이번 사태에 관해 지금까지 세 번의 담화를 내놓았다. 담화의 내용은 한결 같았고 결국 그 역풍에 의해 국민들을 거리로 불러 모으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감사한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담화의 내용을 보니 더더욱 그렇다.

대국민 담화란 어찌 되었던 국민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제스쳐다. 그런데 박근혜는 전혀 그런 스탠스를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국민들을 더욱 열받게 하는데 열을 올렸다. 심지어 어떻게 담화를 발표하면 더 열이 받을지 연구라도 한 듯 보였다.

 

첫 번째 담화는 JTBC의 태블릿 보도 이후 바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해명이 너무 엉뚱했다.

태블릿 PC가 발견되었다면 그 안에 어느정도 정보가 노출되었다고 판단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그 가능성을 점쳐 담화를 내 놓아야 했다. 그런데 담화 내용은 너무나도 조악했다. 마치 금방 탄로날 거짓말을 해놓고도 안도하는 것 처럼 말이다.

결국 바로 다음날 보도로 담화 내용이 거짓이라는, 더군다나 아무런 책임감이 없다는 여론의 직격탄만 맞게 되었다.

 

두 번째 담화도 마찬가지다.

안종범의 구속, 정호성의 구속 등을 전혀 예상 못했다는 듯이 기업이 자발적으로 돈을 냈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개인적으로 박근혜는 자발적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박정희의 그것을 버리지 못했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뭐 정상적인 사고는 어려운 분이니.....

그런데 전혀 1차와 바뀐 것도 없고, 오히려 변명으로 일관한 담화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몰랐다는 것일까? 정말 청와대의 어느 참모도 그런 사실을 알려주지 않은 것일까? 아니면 알려 줬는데 박근혜가 나물라라 하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한 것일까.

 

세 번째 담화는 모든 담화의 클라이막스다.

세 번의 담화 내용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자신은 순수한 의도에서였다고 말한 것이다.

마치 의도만 순수하면 어떤 짓을 해도 괜찮다고 역설하는 것만 같다.

그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말인지 정말 모르는 것인지 궁금하다.

 

항간에서는 분명 이 판을 짜 준 누군가가 있을 것이라고 말을 하곤 한다.

국정감사 증인들의 철저하게 맞춘듯한 상황이나 증언 내용 들을 보면 그런 의혹도 생긴다.

하지만 박근혜의 대국민 담화 내용에 와서 엉클어진다.

상식적으로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세 번의 담화를 박근혜는 천역덕스럽게 한다.

이걸 직접 썼을리는 없다. 누군가 써 준 것이다.

이걸 써 준 사람이 정말 이 생각이 맞고, 이렇게 담화를 발표하면 국민들이 알아줄 거라고 생각해서 쓴 것인지 궁금하다.

아니면 이 담화 내용의 최종 적인 입장은 결국 박근혜의 입장이고, 그렇기에 그 입장에 맞게 말만 바꿔 준 것이라면 이해는 되나, 이런 정도라면 분명 역풍을 맞을 것이라는 사실 정도는 파악했을 것이다. 그럼 차라리 말리는 것이 낫지 않았나. 그저 이 즈음에 담화 한 번 시기적으로 해야 한다고 해서 한 것인가.

 

솔직히 박근혜의 고집이 고려된 담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밑에서 이런 담화를 써 준 참모진도 오죽 답답했을까.

결국 같이 나락으로떨어지는 길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텐데 말이다.

아니면 정말 전혀 다른 세상의 가치관과 언어를 지니고 살아가는 것은 박근혜만이 아닐 수도 있다. 함께 생활했던 파란기와집 사람들 전부가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어쨌든 결국 세 번의 담화는 국민들의 마음을 돌리지 못하고 오히려 불을 붙이는 꼴이 되었다.

 

누가 섰을까?

누구으 지시로 쓴 것일까?

누가 짜 놓은 내용일까?

국민들이 담화 내용을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한 걸까?

정말 미스테리하다.

posted by 양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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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7. 23. 10:52 Story Doctor/Movie

[연가시]- 집단적 공포에 대한 불안

 

 

 

지금 가장 핫한 뉴스는 다름아닌 '배트맨 다크나이트 '라이즈'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뒤늦게 이 연가시를 접했다. 한창 흥행몰이를 하고 나서, 그것도 거미인간을 개봉 첫주에 눌렀다는 놀라운 기사를 접하고 나서도 한참을 지나서 극장을 향했다.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왠지 기대감을 배반당할 것 같은 기분 때문이었다.

 

그렇게 스크린에서 쏟아내는 영상에 나는 몰입하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지극히 단순하다. 변종 연가시에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원인이 밝혀지고, 그 원인을 퇴치하기 위한 사람들의 눈물겨운 사투가 벌어진다. 가족을 살리기 위한 가장의 노력. 그러나 그 배후에 드러나는 음모.

 

영화가 끝나고 누군가 물었다. 정말 돈 때문에 저럴 수 있을까? 단지 돈 때문에 저런 짓을 할 수 있는 것일까? 나는 대답한다. 돈과 권력을 위해서라면 사람은 무슨 짓이든 한다고. 인류의 역사에서 학실은 언제나 권력, 그리고 돈에 얽혀있다. 결국 인간은 매번 똑같은 역사적 과오를 되풀이하는 존재인 것이다. 실제로도 영화로도.

 

 

 

연가시가 실제로 영화와 같은 변종을 일으킬 수 있는지, 사람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기사들이 심심치않게 나오는 것을 보면 분명 이 영화가 가져다 준 충격은 작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서 간과된 것은 왠지 돈을 위해 무슨 짓이든지 저지를 수 있는 인간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정말 허황되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오히려 내 눈에는 연가시의 공포 보다는 공포에 내몰린 인간의 행동, 그리고 그 공포를 조장해 금전적 이익을 얻으려는 자들의 횡포가 더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더욱 그것이 리얼해 보인다. 내 생각이 비약일까?

 

 

연가시가 실제로 사람에게 어떠한 영향을 줄 수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점은 이런 장르 영화가 국내에서 성공했다는 것이다. 영화를 하는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반가울 수밖에.

 

배우들의 연기는 볼만하다. 김명민이야 말을 해서 무엇하랴. 그의 연기는 연기인지 실제인지 구분이 안 간다.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리얼함의 결정이라고 보여진다. 다만 그 주변 배우들, 이하늬의 전문가답지 않은 표정과 대사처리와 김동완의 아무런 이유도 없는 신경질적인 연기가 눈에 거슬리기는 하지만 괜히 오버하는 연기 보다는 훨씬 낫다. 문정희도 아이 엄마로서의 연기를 충실히 보여준다.

 

 

영화를 보는 내내 다른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는 영상은 징그러운 연가시의 꿈틀거리는 모습이라고 한다. 특히 욕자 안에서 사람의 살을 뚫고 나와 꿈틀거리는 연가시의 모습은 충격 그차제다. 하지만 나의 눈에는 강물, 개울 위에 둥둥 떠다니는 시체들의 모습이 더욱 충격적이다.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낸 인재. 대부분의 재난이 인재이듯 이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재난도 바로 인재이다.

 

 

고달픈 가장이 가족을 위해 고군분투 한다는 점에서 왠지 이 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괴물'을 떠올리게 한다.

 

어찌 되었든 이 영화는 이제 김명민의 최고 흥행작이 되었다. 그의 필로그패피에서 중요한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영화 연가시. 앞으로 이런 류의 새로운 장르, 새로운 도전을 하는 작품들이 더욱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posted by 양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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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3. 27. 08:00 Story Doctor/Entertainment



새로운 드라마는 늘 새로운 기대를 안게 한다.
그런 면에서 익숙한 이름과 얼굴이 나오는 이번의 새로운 신작 미드 터치는 그 기대감이 더욱 크다.

24시로 일약 스타로 발돋움한 키퍼 서덜랜드가 다시 돌아온다. 항간에서는 잭 바우어의 재림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느낌은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그리고 리셀 웨폰의 형사 대니 글로버도 등장한다. 지금은 비록 나이는 먹었지만 그래도 그의 연기력을 무시할 수는 없을 터이다. 그리고 기대와 우려가 반반이게 만드는 제작자 팀 크링의 합류다. 그는 미드 히어로즈를 성공시킨 장본인이다. 그러나 마지막 히어로즈가 힘을 잃게 만드는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야기는 자폐증에 걸린 아이 제이크와 그의 아버지인 키퍼 서덜랜드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말을 하지 않는 제이크. 그는 언뜻 의미가 없어 보이는 숫자들을 나열하는 것으로 자신의 표현을 대신한다. 아무 의미가 없을 것 같은 그 숫자들이 그러나 나중에는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을 키퍼 서덜랜드가 알아채는 것이다.

얼핏 보면 이야기는 마치 미스테리처럼 흘러간다. 언뜻 보면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노잉을 보는 듯하다. 하지만 터치의 이야기는 세기말적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 1편을 본 소감으로서는 소통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상처와 치유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우연히 일어나는 사건들이 사실은 우연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필연적으로 연결되있다는 설정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이유는 설명하지 않는다. 어떻게 그렇게 되는 지도 말하지 않는다. 초자연적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에는 탄탄한 연기력을 가진 배우와 팀 크링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능력이 한 몫 한다. 더불어 1편에 에피소드를 감독한 감독이 나는 전설이다, 콘스탄틴을 만든 프랜시스 로랜스라는 것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2편이 나왔다고 하는데 어떤지 아직은 보지 못했다. 하지만 아버지인 키퍼 서덜랜드와 아들은 제이크의 소통이 시작되었고 그 관계 속에서 서로의 아픈 상처를 어루만져줄 수 있는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다. 제목 터치는 서로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손길이 아닐까.
posted by 양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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