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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호
스토리 파고들기, 문학, 영화를 비롯한 온갖 미디어, 그리고 세상 사는 이야기까지 다양하고 재미있는 스토리들을 찾아 소개하고, 분석하고, 뜯어고치는 곳. 세상을 향해 일갈하기도 하고, 가슴 따뜻한 이야기와도 만날 수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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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ice

2018. 2. 20. 08:00 Story Doctor/Movie

 

여배우 폭행과 관련해 김기덕 감독이 입을 열었다.

영화 속에서의 모습과 자신은 다르다는 주장이었다.

물론 영화를 연출한다고, 그 영화 속에 등장하는 사람과 같은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연쇄살인범에 대한 영화를 찍었다고 감독이 연쇄살인범이겠는가.

양들의 침묵 작가는 한니발 렉터와 같은 삶을 살았겠는가.

중요한 것은 작품 안에 드러나는 메시지다. 주장하고 싶은 메시지가 바로 감독이, 작가가 말하고 싶은 바이다.

 

난 작품을 통해 작가의 갸치관이 고스란히 투영된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작품에 자신의 생각을 반영시키고자 한다. 그것이 상업적이든 예술적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보면 여성에 대한 생각이 어떤지 보인다.
그가 여성을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의 영화에 드러난다는 말이다. 그것이 사회적 모순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가 아닌 이상 그것은 작가의 개인적 관념일 뿐이다.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역사적 가치관도 마찬가지다.
역사적 개념이 작가가 어떻게 정립되어 있느냐에 다라 역사에 대한 인식하는 바가 고스란히 작품에 드러나게 된다.
그것이 옳다고 믿고 살아왔겠지.
하지만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이상 비난은 면치 못한다.
다른 사람의 생각도 인정한다는 것은 내 것도 인정해달라는 의미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는 혼자만의 산물이 아니다.

작가, 감독, 스텝, 배우 등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서로 협력하여 만들어내는 종합적인 작업이며 과정이다.

이 과정이 매우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함은 물론이며, 서로 어긋나서도 안 된다.

감독은 권력자가 아니다. 권력자로 생각해서도 안 된다.

이상하게 우리 국민들은 조금의 권력만 가져도 갑질을 하기에 바쁘다.

사회에 나가서는 자신이 을이면서, 식당이나 아파트에서는 종업원, 경비원을 상대로 갑질을 하는 것을 보면 그만큼 권력이 달콤해 보이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래서 과연 무엇이 달라질까.

 

영화도 마찬가지다.

영화 속에 들어가는 가치관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더라도, 그것은 충분히 시스템으로 보완할 수 있다. 문제는 그 시스템을 권력이 무너트린 다는 것.

그러니 변명이 해야 하는 것은 변명이 아니라 당사자에 대한 사과, 그리고 작품에 대한 자신의 가치관의 대한 명확한 해명, 시스템의 변화 등일 것이다. 하지만 십중팔구 어렵갰지. 한 번 쥔 것을 놓지 않으려는 습성들이 있으니까.

그래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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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2. 2. 08:00 Story Doctor/Movie

외계인에 대한 존재는 철저하게 상상에 의존한다. 이유는 바로 우리가 외계인을 만나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상에는 차이가 있다. 공상이나 몽상에 의해서 환타지적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지만, 철저하게 과학적인 상상에 의존해서 외계인과의 만남을 표현할 수도 있다. 그 대포적인 것이 바로 로즈웰콘택트이다.


 


 

카일 맥라클란이 주연했던 로즈웰은 실제 미국 로즈웰에서 있었던 사건을 재구성해 보여준다. 온갖 증언과 기록 등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어떻게 현상들이 왜곡되고 변하는지, 그리고 미 국방부가 사실은 어떤 방식으로 은폐했는지도 차근차근 보여준다. 여전히 불가사의로 여겨지고 있으며, 세계 음모론의 중심이기도 한 네바다 사막 51구역인 로즈웰에 사람들은 외계인의 사체와 우주선 잔해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미 정부는 철저하게 이 구역을 비밀에 부치고 있다. 이러니 더더욱 의심은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낯선 문양이 찍혀있는 금속 파편, 구겨졌다가 이내 원래의 모양으로 복구되는 얇은 금속 막 등의 증언은 기록으로도 남겨져 있다. 그리고 얼마 전에 공개되었던 외계인 해부 영상, 가짜라는 발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발표조차 믿지 못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만큼 진실을 감추려는 미국 정부의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 믿는 것이다.


 


 

콘택트는 유명한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하나뿐인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만약 인류가 우주여행을 하고, 그 여행을 통해서 외계인을 만난다면 어떤 것이 가장 현실적이며 실현 가능할까에 대한 상상으로 쓰여졌다고 한다.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지구 밖 외계인 추적 프로젝트인 SETI, 그리고 그로 인해 외계에서 수신되는 메시지. 자신 이외의 수로는 나누어지지 않는 가장 공통적인 숫자인 소수의 등장과, 메시지의 3차원 결합 등은 한 단계 높은 이지적 존재에 대한 근거를 상상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이 영화가 재미있는 것은 언젠가 가까운 미래가 될지도 모르는 시기에 실제로 일어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여행을 통해 만나게 되는 외계인이 주인공의 아빠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설정이 조금은 판타지적이기는 하다. 그러나 진정 외계의 기술로 우주로 여행을 하게 된다면 그것은 추진체를 이용해 오랜 시간 동안 여행에 의한 만남은 아닐 것이라는 게 칼 세이건의 의견이었다. 그는 오히려 웜홀과 같은 항성간 여행을 위한 통로가 있을 것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천문학자가 그리는 외계인과의 만남이라는 설정을 넘어서 그가 가지는 과학적 상상력에 의해 그려진 부분이 흥미를 자아내는 것이다.


 


 

과학적인 접근 이외에 상당히 독특한 외계인이 영화에 등장해다. 그의 이름은 폴,

로즈웰의 외계인을 닮은 폴은 낡은 배낭에 바지와 상의도 차려 입고 자신을 데리러 올 장소로 이동한다. 주인공들을 만나 함께 여행을 하고, 그를 추적하는 정부 관계자들을 따돌리던 폴은 함께 여행을 하며 주인공들과 친해진다. 그 과정에서 폴이 보여주는 행동은 인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술을 마시고 숙취에 고생하고, 야한 잡지를 보며 즐거워하는 폴의 모습에서 어쩌면 외계인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을까라고 하는 상상을 해보게 된다.

 

이런 상상력은 사실 의외이다. 미국에서는 역사적인 출발점이 침략과 점령에 의한 부분이 많다. 그래서 외계인을 침략자로 설정하는 것에 익숙하다. 이는 미국이 가진 역사적인 인식과 어느 정도 연관이 있다고 본다. 그런데 이런 인간적인 외계인의 등장은 자신들이 가진 외부에 대한 시선을 조금은 다르게 변화시키려는 노력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즉 세계 속에서의 자신들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발견 정도라고 할까? 조금은 거창해 보이기도 하지만 한 번쯤은 생각해 볼 수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posted by 양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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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 12. 08:00 Story Doctor/Movie

 



영화에서는 우리에게 호전적인 외계인만 묘사된 것은 아니다. 외계인은 분명 미지의 존재이며, 신비하고 불가사의하고 호기심이 가는 존재이기도 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망원경을 들고, 카메라를 들고 이 신비한 현상(?)을 찍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바로 이런 호기심 때문이다. 그래서 외계인이 인간에게 호전적이지 않고 그들 역시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상상력이 만들어낸 영화들이 있다. 바로 크로스 인 카운터‘ET’ 등이 그것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외계인은 무섭거나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신비하고 친밀하며 호감이 간다. 심지어는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음악으로 서로의 의사를 전달하는 크로스 인 키운터는 어쩌면 실제 외계인이 나타났을 때 가장 현실적인 대화방법일 수 있는 음악이라는 소재를 사용해 독특함을 보여주었다.



 

ET는 낙오된 외계인이 사람에게 발견되어 보호받는다는 독특한 설정이 돋보이며 그 해 최고의 흥행을 기록한다. 외계인이 등장하면서 따뜻한 가족영화가 탄생되었다는 것은 그 당시로서는 상당히 충격적이고 획기적인 기획이기도 했다. 더군다나 외계인도 생명이며, 존중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영화는 끊임없이 제기하고, 그 제기에 호응하는 것이 다름아닌 어린이들이라는 점은 세상을 지배하는 어른들에 대한 시각을 뒤틀어버리는 효과까지 가지고 있다.

 

이제 외계인은 영화에서만큼은 상당히 친숙한 소재가 되었다. 코미디에 등장하기도 하고, 아예 외계인들과 함께 생활하는 세계를 상상하고 만들어진 영화들도 나오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간은 외계인에 대한 막연한 상상을 영상으로 만들어내는 것을 좋아한다. 그것은 인간답기도 하도, 인간과 전혀 다르기도 하지만 중요한 점은 모든 것은 인간의 상상에 의해 만들어진다라는 점이다. 그래서 어찌 보면 우리가 영상을 통해 바라보는 외계인이 인간을 닮은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들 속에서 인간성을 찾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posted by 양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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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 4. 08:00 Story Doctor/Movie

인간은 언제나 외계 문명의 존재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져와다. 웰즈의 우주전쟁이 그 시초인지는 모르겠지만 수많은 소설들이 외계인의 존재를 그려왔고, 또 상상해왔다. 이러한 외계인의 존재를 고대의 기록들에서 찾는 경우도 있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대한 논의는 잠시 접어두고, 현재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영화 속에서 외계인의 존재가 어떻게 그려졌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웰즈의 우주전쟁)

#호전적인 외계인

서구 문명은 외부에 대해 상당히 호전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것은 단순히 성격의 문제로 보여지지는 않는다. 한가지 예로 미국의 역사 속에서 인디언들의 축출이다. 추수감사절이 인디언들의 죽음 위에 성립되었다는 역사적 평가도 이를 증명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보안관과 인디언이 서로 총을 들고 상대방을 노려보는 모습은 영화 속에서 심심치 않게 보여지곤 한다. 이런 호전적인 성격은 외계인에 대해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자신들의 성향이 그러하니 외계인도 그런 성향을 가질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어떠한 경우는 처음부터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이제 작품을 통해 이런 호전적인 성격의 외계인에 대해서 살펴보자.


 

(인디펜던스 데이)
 

웰즈의 우주전쟁은 화성인의 지구 침략을 소재로 한다. 실제 원작이 라디오 전파를 타자 사람들은 실제 화성인의 침략으로 믿고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고 한다. 이후로 외계인은 침략의 대명사처럼 받아들여졌다. 수많은 외계인 등장 영화는 인류를 위협하고 지구를 차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영화답게 결국 인류의 승리로 끝이 나고 만다.

인디펜던스 데이도 지구의 자원을 노리는 것이었고, ‘V(브이)’도 식량과 번식이라는 목표 때문에 지구를 침략한 것이었다. 이는 어찌 보면 역설적이게 지구의 자원이 우주 유일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의 반영이기도 한 것 같다.

 

호전적인 외계인은 둘로 나뉜다. 하나는 지구인을 숙주로 삼아 조종하는 경우와 말 그대로 무력을 앞세워 침략하는 경우이다.

바디 에어리언이나 인베이젼등은 지구인을 숙주로 삼아 조종하며 조금씩 자신들의 영역을 넓혀나가는 외계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에 반해 스카이 리안’, ‘인디펜던스 데이’, ‘월드 인베이젼등은 과학력과 무력을 앞세워 지구를 침략한다. 그리고 인간은 열악한 상황에서도 그들에게 맞선다.


 

(바디 에이리언)
 

왠지 이런 모습 속에서 미국의 역사가 겹쳐지는 것은 우연인지도 모르지만 결코 가볍게 여겨지지는 않는다. 인디언의 학살과 서부 개척의 역사, 아니 아메리카 대륙을 침략한 서구 유럽의 역사까지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그다지 외계인의 침략 이야기와 다르지 않음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이러한 외계인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거울처럼 투영하는 것은 아닐까.

posted by 양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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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2. 1. 08:00 Story Doctor/Movie

현실과 허구의 묘한 경계

 

기사가 한 건이 있었다. 그 기사에는 태국 지역 한 마을의 화재사건을 보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단순한 보도가 아니었다. 그 마을에 있는 한 여자에 대한 소개가 주된 내용이었다. 그 여자는 마을에서 마녀로 몰렸고, 불길한 재앙을 불러온다고 믿어져 왔다는 것이다. 그녀는 늘 불행을 예언했고, 그 예언은 틀리지 않았으며, 일반 사람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런 그녀가 큰 화재사건을 예고했고, 그 예고대로 화재가 일어나 수많은 사람들이 사망하자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결국 젊은 나이게 세상을 떠나게 되고,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의 유일하게 온전한 장기를 기증했는데 그것이 바로 눈의 각막이었다고 한다.


 

 

이 기사는 태국의 공포영화 디 아이의 모티브가 된 신문 기사다. 태국의 어느 지역 신문에 실린 내용이라고 전해진다. 감독은 이 여자의 각막을 이식 받은 사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를 상상했다고 전해진다. 영화는 전형적인 공포물의 방식을 따른다. 하지만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는 설정이 가져다 주는 공포는 의외로 크다. 영상은 누군가를 깜짝깜짝 놀라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흐릿한 실루엣에서부터 시작해 그 형체를 구체화시켜가는 정체 모를 것에 대한 불안감을 극대화시킨다. 태국의 공포영화가 갖는 두려움은 일본 호러 영화와는 또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영화는 허구다. 죽은 여자의 각막을 이식 받은 사람에 대한 기사는 어디에도 없고, 소식도 모른다. 결국 영화의 모든 내용은 감독의 상상에 의한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실재했던 사건을 그 출발점으로 하고 있다. 실화는 아닐지라도 오히려 더 섬뜩한 기분이 드는 것은 감독의 상상력이 실재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으로 관객들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른 작품으로 베니싱을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어둠에 의해 사람들이 사라진다는 다소 황당한 설정을 가진 영화다. 그런데 문제는 이 현상이 미스테리한 현상 중 하나로서 실제로 있었던 사건이라는 점이다. 가장 유명한 것으로 두 가지 사건이 회자되는데 하나는 미국의 로어노크 섬의 사건이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로어노크로 이주한 사람들이 감쪽같이 사라지게 되는데, 어디로 이주한 흔적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또한 물건, 옷가지 등도 모두 그대로 놔두고 사라졌다. 마을 근처 나무에 의미를 알 수 없는 크로아톤이라는 단어만 새겨진 채 말이다.


 


두 번째 사건으로 캐나다 로키 산맥의 에스키모 마을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한 사냥꾼이 그 마을에 들어섰을 때 모든 것은 정상으로 보였다. 다만 사람이 한 명도 없었을 뿐이다. 음식도 그대로였고, 뜨개질하던 옷도 중간에 그대로였으며, 사냥 도구도 그대로였다. 썰매도 제자리에 있었으며 도무지 사람들이 어디론가 이주한 흔적이라는 찾을 수 없었다. 개들은 모두 굶어 죽어 있었다고 한다.

 

나중에 베니싱 현상에 대해서는 좀 더 자세하게 다루기로 하고, 어쨌든 이러한 현상들이 있었고, 이런 현상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베니싱이다. 공포적 완성도에 대한 것 보다는 어둠이 가져다 주는 분위기, 그리고 그 어둠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심리에 초점이 맞춰진 영화이다. 실화는 아니지만 실존했던 사건을 가지고 상상을 더해서 만들어진 영화에 대한 공포감은 어쩌면 실화라고 알려진 것보다 더 클지도 모른다. 그것이 바로 영화가 만들어내는 상상의 힘이기 때문이다.

 

 

posted by 양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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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0. 20. 08:00 Story Doctor/Movie

실화를 가장한 허구

 

영화 블레어 윗치가 개봉했을 때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다. 실제로 관객들은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라 촬영된 테잎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영화에 등장하는 숲에 찾아가는 사람들도 생겼다. 인터넷과 신문에는 마녀 전설을 간직한 숲에 대한 기사와 정보가 개제되었다. 이쯤 되면 사람들이 속는 것도 당연하다. 이 모든 과정은 영화 개봉 1년 전부터 계획되었다고 전해졌다.


 



블레이 윗치는 철저하게 계획된 영화다. 실화도 아니고 실제로 그런 전설을 가진 숲도 없었다. 단지 철저하게 만들어진 정보를 미리 알리고, 계획을 통해 실화처럼 꾸미고 영화도 실화처럼 만든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이 전설이나 설화가 탄생하게 되는 과정처럼 보여진다. 현대 전설의 탄생 말이다.

 

실화처럼 영화를 보이게 하기 위해 블레어 위치가 쓴 전략은 다큐멘터리 기법이다. 즉 카메라를 들고 영화속 등장인물이 돌아가며 자신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찍는다. 이런 기법은 다큐멘터리이며 조작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더군다나 직접 들고 찍어 흔들리는 핸드핼드기법 화면은 사실감을 더 해주는 효과가 있다. 대표적으로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도입부 전투 장면이 있다.

 

영화 '블레어 윗치'는 마녀들의 전설이 있는 숲으로 사람들이 취재를 위해 들어가고, 그 곳에서 이상한 일을 겪게 된다는 이야기다. 숲으로 들어갔던 사람들이 모두 실종되고, 그 이후에 그들이 촬영한 테잎만 발견된다는 이야기로 전개된다. 화면에는 숲 속의 수상한 존재에 대해서 정체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분위기만 조성될 뿐이다. 그래도 이 영화는 성공했다. 화면에서 보여지는 영상이 실화는 아닐지라도 사실처럼 보여졌기 때문이다. 즉 그래픽으로 꾸미지도 않았고, 촬영이 멋있지도 않지만 우리가 흔히 보는 홈비디오를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이후에 이런 기법으로 촬영된 영화들이 종종 등장한다. 물론 실망감을 안긴 '블레어 윗치2' 를 비롯해, 최근 대박을 터트린 파라노말 액티비티까지. 노르웨이 영화 트롤 헌터나 호주 영화 터널’, 한국 영화인 목두기 비디오’, ‘폐가도 모두 이런 작품의 계보에 들어간다. 이런 작품을 가짜 다큐라는 이름의 페이크 다큐멘터리로 부른다.

 

하지만 이런 영화라고 해서 모두 감정이입을 하게 되고, 사실감 있고, 관객들이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파라노말 액티비티' 말고는 딱히 성공했다고 할만한 영화가 없을 정도로 이외로 치밀하게 구성되어져야 하는 영화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유는 다름아닌 현실성이다. 화면을 흔든다고 해서 현실성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즉 현실에 있을 법한 상황과 환경이 영화에 핵심이다. 그러나 충격적인 장면만을 생각해 극한 상황이나 이상환 상황에 처하게 만들어 놓고 시작하는 페이크 다큐는 이미 현실성을 잃어버리고 만다. '블레어 윗치'가 성공한 이유는 새로운 시도였기 때문이다. 그 이후 속편이 실패한 이유는 새로운 시도가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계기이다. 즉 현실성의 부족이 실패로 이어진 것이다. 반면 비슷한 설정이지만 '파라노말 액티비티'가 성공한 이유는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 이야기 구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슷한 설정이 성공하고 나면 재탕, 삼탕 우려먹는 영화들의 등장으로 인해 초반의 참신함은 사라져버리기 일쑤다. 그리고 이런 페이크 다큐 설정의 영화들의 양산은 결국 질적인 저하까지 초래하게 되었다. 

 

지금은 이런 페이크다큐를 믿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허구이지만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 같은 상황은 관객을 공포로 몰아 넣는다. 결국은 관객이 경험할 수도 있을 법한 이야기 자체에 극한의 공포를 느끼는 것이다.

posted by 양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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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9. 15. 08:00 Story Doctor/Movie

실화, 그 단순함의 공포

 

영화 엑소시스트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이 끔찍한 엑소시즘에 대한 영화가 실화라는 사실에 적잖이 놀라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그만큼 영상이 충격적이라는 데 있다. 이 영화의 실제 이야기는 남자 아이를 엑소시즘했던 세 명의 바티칸 신부 이야기이다. 그 세 명이 신부 중 한 명이 기록했던 일기가 세상에 알려지게 도면서 그것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영화 ‘엑소시스트’인 것이다.


 


영화는 공포를 넘어 괴기함으로 일관되어 있다. 영화가 촬영되는 도중에 영화 관계자나 가족 등 영화와 관련된 사람 아홉 명이 사망한 사건은 유명하다. 심지어 영화 속에서 이었다. 이는 영화를 다시 한 번 괴기함으로 몰고 가는 역할을 한다. 더군다나 배에 쓰여지는 도와달라는 글씨나 못을 토하고, 십자가로 자해를 하는 장면 등은 실제로 목격된 내용이라고 하니 그 당사자는 이루 말 못할 충격을 겪었을 법 하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들은 의외로 엑소시즘에 관련된 영화가 많다. 얼마 전 개봉했던 더 라이트-악마는 있다;도 바티칸에 엑소시틈 강의를 들으러 왔던 사제의 실제 기록이 영화화 된 것이라 한다. 그 기록에는 실제 못을 토해내는 장면에 충격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 외에도 엑소시즘 오르 에밀리 로즈아미티빌(1981년작)’ 같은 영화들도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아미티빌은 실제 저택에서 벌어진 일가족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영화로 사건 자체가 워낙 충격적이기도 했다. 살인을 저지른 가족의 장남은 악마가 시켜 살인을 저질렀다고 말해 이슈가 되기도 했었다. 그 후로 아미티빌 저택은 세계 3대 흉가로 이름을 떨치고 있기도 하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공포영화가 갖는 장점은 사실성이다. 사실 이 영화들이 다른 공포영화에 비해 더 무서운 점은 없다. 단지 실제 일어났고, 앞으로도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 하나가 사람들을 더욱 큰 공포감에 빠져들게 만드는 것이다.


, 실화는 감정이입이 쉽다는 점에서 관객들의 심리를 파고들 수 있는 충분한 요소를 이미 갖추고 있다. 사람들은 실화라는 이야기 속에서 실제 사건의 전개를 알고 싶어하고, 또 그런 것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고 싶어한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와 빗대어 상상을 하거나 비교해보곤 하는 것이다.


실화라는 이름은 언제나 한 걸음 앞서 있다. 감동을 주어도 허구보다는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고, 공포를 주더라도 더 큰 공포를 주며, 웃음을 주더라도 더 큰 웃음을 줄 수 있다. 바로 우리들이 이야기가 될 수도 있으며, 우리 이웃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posted by 양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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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더 라이트도 실화였군요..-_-;;; 이래서 제가 공포영화를 못 보는 것 아니겠습니까. ㅠㅠ

    • 양철호 2011.09.21 13:17 신고  Addr Edit/Del

      제가 공포물 팬이라 좋아한답니다. 그런데 실화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아무래도 다가오는 느낌이 달라지더군요. ^^

2017. 8. 24. 08:00 Story Doctor/Movie

영화제작자의 아내와 남편의 비즈니스 파트너인 남자와의 파리로 가는 여행길.

한적한 시골 길을 달려 도착하는 곳은 파리가 아니라 프랑스 곳곳의 휴양지이다.

칸느에서 시작한 여행은 다양한 먹거리와 볼거리를 거쳐 둘만의 한적한 여행을 보여준다.

불륜이라고 하기엔 뭔가 부족하고, 그렇다고 그냥 여행이라고 하기엔 뭔가 끈적한.....

 

다이안 레인의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모습이 반가웠던 영화다.

그리고 프랑스 지역의 다양한 먹거리와 와인들의 향연이 고마웠다.

하지만 문득 우리나라라면 저런 여행은 죽었다 깨어나도 힘들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서적으로 프랑스이기에 가능했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여성은 여행을 통해 남편과의 관계를, 그리고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게 된다.

자신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영화.

우리 모두 저런 휴식과 여행을 꿈꾸지 않을까. 예기치 않은 여행을 통해 얻는 소소한 기쁨을.

처음엔 사기꾼처럼 보이던 남자는 여행을 거듭할 수록 낭만적인 사람임이 드러나고, 상대방을 즐겁게 해 주는 남자라는 것이 보여진다.

하지만 왠지 사연이 있어 보이는 남자. 아쉬운 것은 그 사연이 영화 속에 별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프랑스를 여행하고 싶다면....

이 영화를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파리가 아닌 다른 지역을 충분히 보여주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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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8. 11. 08:00 Story Doctor/Movie

공포의 미학

 

공포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공포 그 자체이다. 대부분의 감독들은 이런 신념을 가지고 가장 무서운 장면들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피가 튀고, 머리가 잘리고, 관절을 비틀어대기도 하면서 어떻게 해야 가장 무서운지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하지만 정작 놓치는 것은 공포는 장면이 주는 순간이 아니라 전체의 분위기에서 나온다는 것을 쉽게 잊는다.


 


 

조지 로메로 감독이 최초의 좀비 영화인 살아난 시체들의 밤을 만들었을 때, 영화를 본 관객들은 상상 이상의 공포에 감염이 되어버렸다. 사실 영화에 등장하는 좀비는 티가 너무 나는 분장에 흐느적거리며 느릿느릿 걸어가는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이 모습이 얼마나 우스웠으면 후일 새벽의 황당한 저주라는 영화로 패러디 되었을까. 하지만 영화의 분위기는 결코 우습지 않았다. 죽지않고 끊임없이 살아나 밀려오는 좀비들은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장벽처럼 느껴졌다. 사방에서 조여오는 좀비의 등장에 호러팬들은 열광했다. 로메로 좀비 시리즈의 탄생이었다.


 

스필버그의 영화 죠스’는 상어와 인간의 싸움을 그린다. 상어는 실존하는 생명체이다. 또한 바다의 폭군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두려운 장면은 성어에 의해 사람이 찢기는 장면이 아니다. 음산한 존 윌리엄스의 음악과 함께 상어가 어디서 등장할지 모르는 분위기에 있는 것이다. 

 

현재, 어떻게 귀신을 무섭게 등장시키고, 어떻게 사람을 더욱 잔인하게 죽이는지에 치중하는 공포영화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이유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결국 가장 핵심적인 공포의 요소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거나 생각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공포영화에서 가장 공포감을 자아내는 충격적인 요소는 무엇일까? 분위기? 음악? 영상? 아니다. 그것은 바로 실화, 즉 사실성이다. 리얼리티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논픽션이라는 점이 더욱 공포감을 자아내는 것이다. 바로 우리 옆에서, 언젠가 나에게 찾아올 수도 있는 일이라는 점은 영화 속의 영상을 현실로 바라보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그럼 이제부터 현실과 허구, 그 경계에 있는 공포영화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posted by 양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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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8. 4. 08:00 Story Doctor/Movie

 


 

시간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그저 흘러가는 하나의 흐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는 아주 작은 의미라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결국 핵심은 시간은 지나간다는 것이다. 가장 소중한 순간이라도, 아니면 헛되이 보내는 순간이라도 말이다.

 

스콧 피츠체랄드의 원작 소설을 영상화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시간의 흐름이 서로 다른 두 사람의 만남을 통해 사랑, 그리고 소중한 순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분명한 것은 이는 시간에 얽힌 공상과학적인 영화는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드라마틱하고 애절하며, 감성적인 영상이다.


벤자민 버튼은 80대의 노인의 모습으로 태어난다. 그리고 그는 하루하루 살면서 점점 나이가 젊어진다. 그런 그에게 데이지는 너무나도 순수하고 아름다운 소녀였다. 60대의 나이가 되어 있는 벤자민과 6살의 데이지의 만남은 어쩌면 운명적으로 엇갈리는 시간을 이미 예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서로의 감정들을 뒤로하고 벤자민과 데이지는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다가 결국 둘의 나이가 비슷해지는 시기에 다시 만나게 된다. 이 한 순간을 위해 그토록 오랜 세월을 기다렸다는 듯이 두 사람은 뜨거운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그것도 한 순간, 벤자민은 다시 데이지의 옆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젠 너무 어려진 벤자민의 모습을 발견한 나이가 들어버린 데이지는 그의 최후를 지켜본다.



 

두 사람의 시간은 반대로 흐른다. 결국 둘 사이의 접점은 정말 일순간에 불과하다. 서로 나란히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엇갈리는 운명에서 교차점을 찾기는 어렵다. 그 순간에 둘의 사랑은 그 누구보다도 뜨거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시간이 그들에게 가르쳐 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무리 짧은 순간이라 하더라도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랑은 아무리 순간이라 하더라도 진실했기에 그토록 오랫동안 잔상을 남기고 기억되는 것이다.

이 작품이 가지는 독특한 시간에 대한 설정은, 오히려 사랑에 대한 감정을 더욱 부각시키는 데 효과적이다. 더군다나 인간이 닥친 현실이나 처한 상황에 대한 이유가 아니라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라는 점에 더욱 힘이 실린다. 그들의 사랑은 서로 짧게 끝날 것을 당연히 알지만 결코 식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 하나의 작품이 또 있다.

선로 위에서 나 돌아갈래!”를 외치던 한 남자를 기억하는가? 그 남자는 그 외침 이후로 과거로 거슬러간다. 선로를 따라 거꾸로 가는 기차의 모습, 그리고 거슬러 올라간 이후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 바로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이다.

이 작품은 시간을 재해석한 것은 아니다. 그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한 남자의 삶이 어떠했는지 무덤덤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왜 그가 영화의 맨 처음 시작에 그렇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가 어떤 계기를 겪어 그런 성격을 가지게 되었는지 영화는 아무런 장치 없이 보여주기만 한다. 그리고 해석은 오로지 관객의 몫이다.



 

여기서 시간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타임머신 같은 존재가 아니다. 그저 그가 겪어온 주마등 같은 기억의 파편일 뿐이다. 그러나 그 파편이 한국 현대사에서 너무나 강렬한 순간순간에 존재한다는 것이 그를 바꾼 이유일 것이다.

이 영화는 역사가, 그리고 사회가, 한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순수하고 깨끗했던 한 남자가, 험난한 현대사 속에서 변화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결국 역사라는 시간의 쌓임이 주는 무게감을 고스란히 느낄 수밖에 없다. 나 또한 결코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제껏 시간이 가지는 개념, 그리고 시간이 표현되는 방법들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우리는 시간을 잘 이해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아직 시간은 우리가 이해하기에 너무나도 복잡하고 오묘한 세계임에는 분명하다. 또한 꽤 재미있는 소재임에도 분명하다. 과학도, 판타지도 가능한 것이 바로 시간의 세계이다.

시간이 주는 그 무한한 잠재력과 가능성, 그리고 기발함에 좀 더 시선을 던진다면, 더 재미있고 의미있는 스토리들이 나타날 것이다. 이제 시계를 들여다보고 초침이 가는 것을 눈 여겨보자. 어느 순간 그 초침이 멈추게 되면 전개될 세상이 어떨지 상상해보자. 모든 것의 시작은 바로 상상에서 시작되니까.

posted by 양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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