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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막힌 세상 이야기

양철호의 이슈 파고들기-심형래 사태

by 양철호 2011. 9. 7.



뇌리에 오버랩되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디 워'가 개봉했을 당시 시사토론 프로그램에서의 논쟁에 대한 기억들이다.
그때의 구체적인 내용들을 이제 와서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점은 이번 심형래 사태를 통해 한국 영화계는 다시 한 번 구설수에 오르고 끝모를 늪으로 빠져들 수 있다는 부분이다.
한 사람의 잘못된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이고, 잘못된 평가에 사람들이 어떻게 경도되는지를 보여주는 핵심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용가리'가 개봉했을 때의 우려의 목소리는 심형래의 신지식인 선정이라는 이슈에 묻혀버렸다.
헐리웃 CG를 벗어나 국내 기술의 CG라며 자랑스럽게 선보인 영화의 퀄리티는 사실 입에 올리기에도 민망할 정도였다. 국내 기술이 그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에 놀랄 뿐이었다. 참고로 2001년에 개봉한 용가리는 98년에 개봉한 헐리웃 영화 고지라의 그래픽 수준에 한참 못미치는 퀄리티를 보여준다.

사실 그 당시에도 국내 CG의 기술은 세게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높은 수준이었다. 다만 영화쪽에는 수지타산이 안 맞기 때문에 해외로 진출하거나 광고쪽에서 일하는 것이 정설이었을 뿐이다.
현재 헐리웃의 주요 영화 CG에 한국인이 참여하고 있다는 것은 굳이 이야기 안 해도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왜 심형래는 굳이 한국 자체 기술이라고 평가했을까. 이는 엄밀히 말하면 수준 낮은 퀄리티를 감추기 위한 하나의 언론 플레이 이면서 애국심 마케팅의 일환이라고 여겨진다.
이미 '디 워' 이전에 '용가리'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CG팀에 20웍원을 주고는 장부에 120억원으로 적은 것에서 드러나듯, 심형래는 진정 영화의 퀄리티를 올리는 것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규모가 큰 영화에 대한 집착을 보이며 그 가운데서 부당한 이익을 챙겼다고밖에 여겨지지 않는 부분이다.
결국 성공했다고 자축하던 심형래는 체불임금과 퇴직금을 지급하지 못했고, 그로인해 노둥부에 고발당하면서 이제는 검찰 조사를 앞두고 있다.

영화 제작비의 횡령은 과거 영화계에서는 비일비재했다. 그러나 지금이 어느 시대인가.
투자는 철저하게 배급을 함께하는 대형 투자사의 주도하에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시스템이 정착되면서 철저한 장부 관리가 이루어져 수익 배분의 증명이 쉬워졌다. 이렇게 된 이유가 바로 투자사의 수익게 직결되기 때문이다. 씁쓸하지만 뿌리깊은 부도덕한 관행이 사라졌다는 것에는 긍정적인 요소도 있다. 문제는 심형래의 행태를 어느 누구도 막지 못했다는 것이다.

결국 돈을 댔던 수출입공사나 콘텐츠 진흥원은 한 푼 돌려받지 못하게 되었다. 심형래는 검찰 조사는 물론 구속 수사도 불가피하게 되어보인다.

과거 나는 심형래 영화의 문제점으로 질 낮은 퀄리티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CG나 특효에만 매달리고, 정작 시나리오에는 소홀한 점을 지적했었다. 이제와서 보니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돈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좋은 영화도, 아무리 그래픽이 뛰어나도 시나리오의 부재 속에서 좋은 영화가 탄생할 수 없다. 더군다나 좋은 퀄리티의 화면을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 그리고 자본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이 모든 것을 심형래는 자신의 배를 불리는 데 사용했다는 것과, 그 밑에서 영화의 꿈을 키우며 일했을 사람들의 노력과 땀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