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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Doctor/Movie

KINO(양철호)의 영화-시간여행5. 시간의 뒤틀림, 뫼비우스의 띠를 풀어라.

by 양철호 2017. 7. 18.

두 편의 독특한 영화가 있다. 그 하나는 트라이앵글이라는 버뮤다 삼각해역과 관련된 영화이고, 또 다른 하나는 타임 크리암이라는 시간여행에 관련된 영화다.

 

이 두 영화의 공통점은 같은 장면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이유는 바로 시간의 뒤엉킴이다. 한 번 지나간 시간을 주인공은 다시 겪는다. 마치 같은 꿈을 반복해서 꾸는 것처럼. 그러나 다른 점은 같은 꿈을 꿀 때마다 겪는 일들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그것은 반복된 시간의 경험이 주는 선물일까? 아니면 악몽일까? 영화는 독특한 스토리를 가지고 시간을 뒤엉켜 관객을 혼란 속으로 몰아넣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간단한 줄거리를 살펴보자.


 

트라이앵글은 일단의 인물들이 요트를 타고 바다로 여행을 떠난다. 일종의 버뮤다 삼각해역이라고 불리는 지역으로의 여행이었다. 그러나 폭풍을 만나 사고가 나게 되고 요트는 조난을 당해 바다에 표류한다. 그때 아무도 없는 무인의 거대한 유람선을 발견하고 주인공들은 구조를 기대하며 유람선에 오른다. 그러나 유람선에서 기다리는 것은 살육이었다. 정체불명의 인물이 그들을 하나씩 죽이려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주인공은 그 살인마가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즉 다른 시간에 존재하는 자신인 것이다.

 

여주인공은 그렇게 반복된 살육에 내몰려 사람들을 죽여나간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그녀는 자신을 죽이려는 자신을 죽인다. 그리고 새로운 시간이 다시 시작된다. 하지만 그것을 보고 있는 또 다른 자신이 존재하고 있었고, 그렇게 시간의 뒤엉킴 속에 인물이 뒤엉키고 만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구조를 가지고 있는 이 영화의 결말은 결국 여주인공이 모두 죽이고 바다로 뛰어들어 육지로 돌아오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끝날 것 같던 그녀의 악몽은 다시 요트 여행을 떠나는 곳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즉 새로운 시작인 것이다.

 

이 영화에서 암시되는 것은 바로 죽음이다. 즉 시간의 뒤엉킴으로 인해 사건이 생기는 것인지, 아니면 주인공들의 죽음으로 인해 시간의 뒤엉킴이 생기는 것인지 묘한 여운을 남긴다는 점이다.

 

시간의 초월과, 다른 시간대의 사람이 동시간에 존재하는 모순, 그리고 되풀이되는 시간을 따라 걷다 보면 마치 뫼비우스의 띠 속에 갇혀 있는 기분이 든다. 영원히 처음과 끝을 알 수 없는 되풀이되는 반복의 시간 말이다.



그에 비해 타임 크라임은 '트라이앵글'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인다. ‘트라이앵글이 죽음과 시간과의 혼란이라면 타임 크라임은 오로지 시간에 의해 벌어지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주인공은 휴식을 취하던 중, 숲에서 이상한 것을 목격한다. 숲으로 향한 주인공은 갑작스럽게 자신을 습격하는 괴한과 맞닥뜨리게 되고, 괴한을 피해 간신히 도주한다. 그가 도착한 곳은 어느 과학 연구소. 그 곳에서는 시간의 여행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었다.

 

주인공은 연구소 직원의 말에 따라 시간 여행 실험에 참여해 과거로 돌아가게 된다. 쉽게 해결될 것 같았던 문제는 같은 시간대에 같은 인물이 두 명 존재한다는 모순에 의해 하나씩 꼬이기 시작한다.

 

주인공이 과거로 오게 될 때 겪었던 일들을 하나씩 재연하면서 과거의 주인공을 꾀어내 공격을 한다. 완전히 되풀이되는 시간인 셈이다. 과거의 자신을 죽여야 되는 주인공은 그러나 실패하게 된다. 문제는 더욱 복잡해서 과거의 주인공도 과거로 가버리고 말았다는 점이다. 여기서 한 가지 더 꼬이는 것은 주인공이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는 점이다. 이제 같은 시간대에 주인공이 세 명이 존재하게 된다.

 

세 명의 뒤엉킴은 영화를 끝 모를 지하 깊숙한 수렁으로 끌고 들어간다. 해결될 것만 같았던 사건들이 다시 엉키고, 어떻게 풀어져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문제는 이 영화에는 치명적인 오류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앞에서 밝힌 트라이앵글은 오류를 피해가기 위해 죽음이라고 하는 존재를 집어넣어 은근슬쩍 넘어가려는 시도를 했다. 뭐 성공적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타임 크라임은 그런 꼼수를 쓰지는 않았다. 그러나 너무 시간의 뒤엉킴에 집착한 나머지 실수를 하는데 그것은 모든 사건의 발단이 바로 과거로 간 첫번째 주인공에 의해 벌어진다는 점이다.

 

주인공을 숫자로 구분해 보면 맨 처음 습격을 당한 주인공을 1이라고 하고, 습격을 당한 후에 과거로 가게 된 주인공을 2라고 하자. 즉 주인공을 숲으로 꾀어내어야만 모든 사건이 벌어진다. 그런데 꾀어냄을 당해야만 과거로 갈 수 있는 셈이다. 꾀어내지 않으면 과거로 갈 이유도 없이 잘 쉬고 있을 주인공인 것이다.

 

즉 어떠한 원인에 의해 주인공은 과거로 가지만 그 원인이 미래에 있다는 역설이 존재하게 된다. 인과관계의 시간률이 흐트러진 것이다.

 

영화는 이 시간의 흐트러짐을 바로잡는데 버거워 보인다. 그래서 스토리가, 시나리오가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다시 한 번 증명된다. 물론 돈만 쏟아 부은 그렇고 그런 영화보다는 훨씬 잘 만들어진 저예산 영화임은 인정한다. 그러나 결정적인 모순에 의한 마이너스를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시간은 도대체 무엇일까? 사람들이 만들어낸 개념이 아닌 사람이 발견한 개념, 그럼 시간은 도대체 어떤 법칙을 가지는 것일까? 절대적일 것만 같았던 빛이 블랙홀에 의해 빨려들어가듯, 시간도 무언가 질량을 가지는 물질은 아닐까? 그 물질에 의해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질량을 가진 물질의 뒤틀림은 충분히 있을 수 있기에, 시간의 뒤틀림도 언젠가는 우리들 눈 앞에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의 하나가 되지 않을까?

 

모순된 시간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하고, 복잡하다. 그리고 해법도 쉽지 않다. 뫼비우스의 띠에서 처음과 끝을 구분하고, 겉과 속을 구분할 수 없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