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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Doctor/Movie

KINO(양철호)의 영화-살인자의 기억법, 현실과 상상의 경계.

by 양철호 2017. 9. 12.

 

과거 많은 살인을 저질렀던 주인공 설경구.

그는 스스로 세상에 필요없는 자들을 골라 죽였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고 있지만 어찌 되었든 살인자다.

그리고 그는 15년 전 마지막 살인 이후에 살인을 그만 두었다.

그가 병에 걸렸기 때문이다.

알츠하이머.

서서리 기억이 사라져가는 병. 일명 치매.

의학적인 분석이야 영화의 주된 내용은 아니니 넘어가자.

그런 설경구가 우연히 접촉사고를 내게 되고 김남길을 만난다.

단번에 그가 최근 일어난 연쇄살인범이라는 것을 알게 된 설경구, 더구나 그가 자신의 딸인 설현과 만난다는 사실에 더욱 경계한다.

문제는 설경구는 기억을 서서히 잃어간다는 것.

자신이 공들여 기억했던 것들마저 서서히 잊어간다.

 

영화는 이 뻔한 공식을 현실과 환상이라는 두 가지 틀을 가져와 뒤섞어 놓는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환상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아니 구분을 하는 것은 무리일지 모른다.

거의 모든 것이 주인공인 설경구의 시점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그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모든 것에 의심을 해 봐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 놓는다.

그가 믿는 것들이 그리고 하나씩 무너진다.

누나의 존재, 수녀원, 그리고 증거들까지.

하지만 이내 그것조차 잊어버리는 주인공의 병.

 

주인공이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는 유일한 방법은 녹음이다.

메멘토에서 주인공인 가이 피어스가 자신의 몸에 문신을 새기고 매일 녹음을 한 후에 그것을 아침에 들었던 것처럼.....

설경구 역시 녹음을 활용한다.

하지만 왠지 녹음 역시 불안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모든 것이 뒤틀려버린다.

그런 면에서 뒤틀림은 영화 해빙과 닮아있다.

조진웅의 뒤틀린 기억의 진실은 어디까지인지 묘한 뉘앙스를 남긴 해결을 내린 해빙과는 달리 그래도 살인자의 기억법은 결말은 명혹하게 그려 놓는다.

그리고 속죄처럼 설경구는 기억을 잊어버리고 만다.

 

과도한 감정 표현과, 역류할 것 같은 답답함이 영화 곳곳에 녹아있다.

설경구의 감정은 여전히 과하다. 그것이 오히려 그의 시각이 환상이나 왜곡이 아닐까 의심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에 비해 설경구가 등장하지 않는 장면의 감정은 상당히 정적이다.

그것은 왜곡이 아닌 철저한 현실이라는 반증이 아닐까.

 

영화의 결말은 열린 결말은 아니다.

명확하게 끝을 맺고 있다.

하지만 영화의 반전을 바란 관객들에게는 미안하게도 이 영화에는 반전 같은 깜짝 선물은 없다.

오히려 기억을 잃어가면서도 기억하려 애쓰는 한 남자의 처절함이 보여질 뿐이다.

그 처절함은 결코 유쾌하지 않다.

브이아이피처럼 과도한 표현을 일삼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친절한 것도 아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젠 설경구에게서 정상적인 캐릭터의 연기를 보고 싶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에서 보여주었던 그런 설경구는 이제 보기 어려운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