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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거나 말거나

양철호의 세계의 미스테리-철가면의 죄수는 누구인가?

by 양철호 2011. 10. 6.



한 편의 영화가 개봉한다. 배우들의 면면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가브리엘 번, 존 말코비치, 제라르 드 빠르디유, 제레미 아이언스. 이 배우들이 출연한 영화는 바로 아이언 마스크. 철가면의 죄수를 다룬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디카프리오는 우리 14세 역할과 철가면 죄수의 역할을, 가브리엘 번이 삼총사의 달타냥, 존 말코비치가 아토스, 제라르 드 빠르디유가 포르토스, 제레미 아이언스가 아라미스 역을 맡았다.

영화 이야기를 하려고 꺼낸 것은 아니다. 바로 이 영화가 그 유명한 미스테리의 인물 최수 철가면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수수께끼의 인물인 철가면의 정체는 과연 누구일까? 이제 그 실체로 접근해 보자.

철가면의 죄수는 34년동안 프랑스의 바스티유 감옥에서 얼굴에 가면을 쓴 채 보냈으며, 1703년 11월 19일에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이 철가면의 죄수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고 한다. 물론 감옥의 간수는 물론 책임자도 말이다.

철가면의 죄수가 세상을 떠난 후 50년이 자난 시기에 볼테르가 철가면의 죄수에 대해서 언급을 한다. 볼테르에 의하면 최수의 
가면은 턱 부분에 용수철 장치가 되어 있어 가면을 벗지 않아도 음식을 먹을 수 있었으며, 가면을 벗으면 그를 즉시 살해하라는 명령이 내려져 있었다고 한다. 이 죄수는 우아하고 품위가 있었으며 레이스를 갖고 치장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이것은 그가 지위가 몹시 높은 인간이었다는 것을 이미하며, 교도소장도 이 죄수가 있는 곳에서는 앉지 못했다. 물론 의사도 그의 얼굴을 보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이상한 것은 이 죄수가 처음 감옥에 투옥되었을 당시, 유럽에서는 고위인사 가운데 어느 누구도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불테르에 의하면, 이 수수께끼의 죄수는 널빤지에 자국을 내서 무엇인가를 적어 이것을 감옥의 창문 밖으로 던진 적이 있었는데 그것을 어부가 주워 교도소장에게 신고했다고 한다. “무엇이 씌어 있는지 읽어보았는가?”라는 교도소장의 물음에 어부는 ‘문맹’이라고 답했고, “당신은 운이 좋다”고 교도소장이 말했다고 한다.

이런 인물인 철가면의 죄수는 과연 누구일까? 몇몇 가설을 여기서 소개해보자.
우선 볼테르의 추리를 들어보자. 볼테르는 루이 13세가 성불구자라는 소문이 있었으며, 왕비인 앤과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앤은 마자랭 추기경과 사이가 좋아 이 둘 사이에 아이가 생겼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 아이는 루이 14세가 태어나기 전이기 때문에 비밀이었고, 왕위에 도전할 수도 있기 때문에 감옥에 보내졌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왕가와 닮은 얼굴 때문에 철가면이 씌워졌다는 것이다.


                                               (루이 14세)

1847년에 뒤마는 유명한 소설 [철가면]을 펴낸다. 이 소설에서는 영화와 같이 철가면의 죄수가 바로 루이 14세의 쌍둥이로 등장한다. 물론 이 설이 뒤마에 의해 최초로 제시된 것은 아니다. 어쨌든 왕위 계승의 문제가 생길 수 있기에 쌍둥이 중 아우를 숨겼을 수도 있다는 설이 체기된 것이다.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는 철가면의 죄수가 만토마공국의 재상 마티올리로 상당부분 믿어진다. 마티올리는 만토마공국의 재정을 위해 토지를 루이 14세에게 팔 생각이었으나 스페인에 이 사실을 알리지 말아야 했다. 왜냐하면 프랑스와 스페인은 이 당시 상당히 사이가 안 좋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마티올리가 스페인쪽에 거래 사실을 누설하는 바람에 거래는 취소되고 만다. 이 때문에 루이 14세가 격분하여 마티올리를 잡아서 감옥에 가두었다는 것이다. 이는 외교적인 문제가 될 소지가 있기 때문에 가면을 씌웠다고 해석된다. 더군다나 감옥에서 철가면의 죄수는 마르셀로 볼리기도 했다. 하지만 감옥에 들어간 사람에 대해서 이례적으로 너무 철저한 감시를 한다는 것이 이 당시의 상식으로는 맞지 않는다.

또 하나의 가설로 루이 14세의 어린 시절 소꿉놀리 친구이자 배다른 형제로도 의심받는 유스타슈 도제라는 인물이 거론된다. 이 유스타스 도제는 루이 14세의 비밀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도 의심받는데 이런 의혹을 제기한 인물이 바로 쥘 레르라는 역사학자이다. 이 사람은 루이 14세 당시의 재무장관인 푸케를 연구를 근거로 이 같은 주장을 한다.

그러면 유스타슈 도제는 도대체 어떤 인물인가? 그는 어떤 일을 저질렀는가? 

1920년대 말 모리스 뒤비비에라는 역사가의 연구는 유스타슈가 1630년대 말에 출생했으며, 
파카르디 지방의 시골 선비계층에 속했다고 한다. 그는 프랑수아 드 카부이에의 아들로 1637년 8월 30일에 출생했다고 하며 6명의 형제 중 4명은 전사했고 5번째의 루이 조데 드 카부이에는 루이 14세의 신임을 받고 있던 관리였다. 그러나 유스타슈는 가족들 사이에서 말썽꾸러기였던 모양이다. 뒤비비에는 조사가 진척됨에 따라서 이 사나이가 철가면이 아닌가 하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뒤비비에는 유스타슈가 악명 높은 ‘독살사건’혹은 1668년에 발생한 그 서막이 된 다른 사건에 한 몫을 했다고 보았다. ‘독살사건’은 1673년에 시작된다. 치안장관인 니콜라스 드라 레니는 야릇한 소문을 듣게 되었다. 교회의 고해성사에서 사모님들이 남편을 독살하려 했다는 것을 참회하는 것이다. 라 레니는 사건의 전모를 밝히기 위해 4년 동안 노력했고 그 결과 믿기 어려운 ‘독살단’의 정체가 드러났다. 흑미사를 행하는 점쟁이와 신부가 괴수였다. 거기에는 적지 않은 수의 여관도 관계하고 있었다. 왕의 애첩인 몽테스광 부인의 연루도 확실했다. 그리하여 왕은 충격을 받았다. 그녀의 목적은 왕의 사랑을 독점하여 라이벌인 루이즈 드 라 발리에르 부인의 콧대를 꺾는 데에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흑미사에 참가해서 자기의 복부를 도려내어 제단에 바쳤다. 귀부르라는 신부가 제단에서 갓난아이의 목을 따고, 다른 의식에서는 와에게 바칠 미약을 만들었다. 이것은 여자의 생리와 남자의 정액을 혼합한 것이었다.

후자는 남자로 하여금 신성한 술잔 속에다 자위행위를 하도록 해서 얻은 것이다. 이 소름끼치는 이야기는 촛불만 켜진 방에서 모든 일을 조사하도록 하는 엄명 아래 우리어졌다. 그리하여 이것은 ‘샹브르 아르당트의 조사’라고 알려지며 한 마디도 외부에 누설되면 안 되는 것이었다. 독살사건의 괴수들 대부분은 불로 태워 죽었다. 그리고 몽테스팡 부인은 추방되었다.

아무튼 후의 독살사건과 관련하여 귀부르 신부는 다음과 같이 자백했다. “나는 오를레앙 공작부인의 저택에서 흑미사를 드리도록 부탁을 받았으며 사례는 어느 외과의사에게서 받았다. 그 의사는 생 제르맹 지역의 자선병원 근처에서 동생과 살고 있었다.” 이곳은 1668년에 유스타슈 도제와 아우가 살고 있었던 장소이다. 샹브르 아르당트의 취조에 의한 다른 증언에서도 도제라는 외과의사의 이름이 나오는데 그는 ‘약제’를 제공했다고 한다. 뒤비비에는 이 ‘외과의사’ 도제가 유스타슈이며, 그의 유형은 이 르사주와 마리에트 사건에 연루된 까닭이라고 추측한다.

이 외에도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사실 너무 많은 설과 추측이 난무하다. 역사에 대한 추측이 가진 한계성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철가면의 죄수는 실존했으며, 그 당시에도 여러가지 수수께끼로 유명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진실은 모른다. 역사 속에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갑자기 어떤 사실에 대한 기록이 튀어나와 진실을 말해주기 전에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