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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호
스토리 파고들기, 문학, 영화를 비롯한 온갖 미디어, 그리고 세상 사는 이야기까지 다양하고 재미있는 스토리들을 찾아 소개하고, 분석하고, 뜯어고치는 곳. 세상을 향해 일갈하기도 하고, 가슴 따뜻한 이야기와도 만날 수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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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1. 16. 08:00 믿거나 말거나



영국에 의적이 있다. 윌리엄 왕 시대에 농민들을 핍박하는 것에 대항해 싸운 의적, 그는 셔우드 숲에서 농민들을 위해 싸우며 귀족들의 재산을 약탈해 농민들에게 나누어 준다. 그야말로 의적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가 바로 영국에서 아더 왕 다음으로 인기가 많은 영웅 로빈 훗이다. 그리고 지금도 로빈 훗의 전설은 영국의 전역을 떠돌며 영화로, 이야기로 재탄생하고 있다.

전설은 어느 정도 사실에 근거한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에 근거한다고 하지만 진실은 아니다. 즉 전설은 역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로빈 훗도 아쉽게도 역사가 아닌 전설이다. 그렇다면 로빈 훗의 전설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일까? 아니 로빈 훗은 과연 누구였을까?

로빈 훗이 등장한 문헌들을 살펴보자. 맨 처음 로빈 훗이 등장한 문헌은 시인 윌리엄 랭그의 '농부 피어스'라는 작품으로 1377년 작품이다. 이 작품에 로빈 훗이 처음으로 등장하며, 이미 로빈 훗의 전설이 완성되어 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이미 이전부터 로빈 훗에 대한 이야기는 퍼져 있다는 말이 된다. 1510년에는 '로빈 훗의 작은 무용담'이라는 책이 한 인쇄공에 의해 출판이 되고, 윌터 스콧의 '아이반호'에 등장하는 로빈 훗은 리처드 1세(1157~1199)의 친구로 삼림의 의적이라는 평판이 이미 확립한 이후이다. 가장 신빙성이 높은 것은 1420년 경에 쓰여진 '스코틀랜드 연대기'에서 저자인 앤드루 윈타운은 1283년의 연대에서 로빈 훗과 그의 친구 리틀 존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렇다면 로빈 훗의 활동 근거지는 어디일까?
요크셔 주의 휘트비 근처에 로빈 훗 베이라는 작은 촌이 있다. 그리고 그 근교에 로빈 훗 버트 라는 두 개의 고분도 존재한다. 또 중세 시대에는 요크셔 반스데일 숲이 노팅험의 셔우드 숲과 연결되어 있었다. 요크셔와 노팅험의 연결 무언가 보이지 않는가?


그런 와중에 19세기 중반에 로빈 훗의 신원으 밝혀줄 중요한 문건이 발견된다. 영국 역사에 관한 문헌을 정리하던 요셉 헌터(이름도 헌터다 하필)라는 고문서 연구가가 찾아낸 문서에 와렌 백작을 섬기고 있던 삼림관 아담 훗의 아들 로버트 훗이란 인물을 찾아낸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로버트 훗은 1280년 태생으로 1357년에는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로버트 훗은 1316년에 웨이크필드의 땅을 영주에게 빌린 기록이 남아 있다. 이 당시에는 영국과 스코틀랜드가 험악한 분위기로 서로 싸우고 있을 때였다. 로버트 훗은 영주에 의해 전쟁에 참가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참가하지 못해 벌금을 낸다. 그 기록이 남아 있다. 이후 1317년에 두번째 군대가 소집되었지만 이때에는 벌금에 대한 기록이 없다. 현대 역사학자인 워커는 로버트 훗이 이때에는 군대 소집에 응했다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5년 후 랭카스터 백작이 일으킨 전쟁에 다시 로버트가 소집된다. 이때에도 응했다고 판단된다. 문제는 랭카스터가 왕을 대상으로 전쟁을 일으켰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랭카스터는 패배하고, 이때 랭카스터에게 동조했던 자들은 불이익을 받게 되는데 바로 로버트도 이때 집을 빼앗기게 되는 것이다. 결극 이때 동료들과 함게 반스데일의 숲으로 도망가 살게 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이 당시 숲에서 사슴을 잡는 다는 것은 그야말로 중형을 무릅쓴 행동이다. 사슴과 숲은 왕의 전유물이었고 절대로 시민들이 함부로 할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지역 민요에 의하면 당시 왕인 에드워드 2세는 숲에 사슴을 사냥하러 왔다가 뱔견할 수 없자 로빈(당시 로버트와 로빈이 별도의 단독형 이름이 아니라 로빈은 로버트의 약자였다) 훗을 잡기를 희망했다고 한다. 그러다 사제로 변장해 숲에 들어가고 그로 인해 로빈 훗을 만난 왕은 그가 마음에 들어 왕궁으로 데리고 와 시종 일을 시킨다. 1년 정도 이후 로버트 훗은 시종 일을 그만 두고 반스데일로 돌아가 1346년 경, 60대의 나이로 사망했고 하는 것이 민요의 내용이다.

셔우드 숲의 로빈 훗과 웨이크필드의 로버트 훗이 같은 인물이냐 아니냐는 아직 논란의 여지가 많다. 전혀 다른 별개의 인물로 보는 설도 많고, 같은 인물로 보는 설도 많다. 둘 다 의문의 여지는 많이 남아 있다. 문제는 전설이라는 것이 가지는 확장성과 신화적 상상력이다. 더군다나 그저 그런 전설이 아닌 영웅에 대한 전설이다. 영웅에 대한 전설은 일반인에게 쾌감을 주며, 영웅적 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해 더욱 가감되고 미화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로빈 훗의 진정한 의미는 바로 농민들이 자신들의 존재 가치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 시대에 나타났다는 점이다. 이 의문은 존 볼(영국의 성직자)의 혁명 원리와 1381년의 와트 타일러의 난(영국 돈남부에서 인두세 부과 등에 반대하여 일어난 농민 봉기)에 이르로 폭발했다. 이는 로빈이라는 이름이 영국의 시에 처음으로 등장한 직후였다. 이 농민 봉기는 일반적으로 중세의 종말을 고하는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즉, 로빈 훗의 이야기는 그가 실존했느냐의 문제 보다는 그의 가치가 중세적 상황의 종말을 고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진정한 의적인 로빈 훗의 존재 가치로서 말이다.
posted by 양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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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경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 라는 외침이
    로빈후드 신화를 통해 폭발한 셈이려나요..-.-;;

    아니, 어쩌면 그 외침을 위해서 만들어진 신화가 로빈후드일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