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tory Doctor/Book & Comics

양철호의 책 이야기-지적 사기

by 양철호 2011. 6. 17.



우선 나는 이 책의 저자나 출판사와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밝힌다.
그러니 오해 없기를 바란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내 느낌은 한 마디로 통쾌하다였다.
온갖 어려운 말과 알아듣지 못할 해설로 버무려진 현대 프랑스 철학자들을 보기 좋게 한 방 먹였으니까.

이야기의 발단은 이렇다.
1996년 봄 포스트모더니즘 계열 학술지인 -소셜텍스트(Social Text)-는 '과학전쟁'이라는 제호의 특집호를 만들었고, 이 특집호에 뉴욕대학의 물리학교수 앨런 소칼(Alan Sokal)이 기고한 -경계의 침범:양자중력의 변형해석학을 위하여-라는 논문이 실렸다. 학계는 이 논문에 주목하였다. 문제는 이 다음에 벌어졌다. 

2주 후에 소칼이 링구아 프랑카(Lingua Franca)에 -물리학자가 문화연구로 실험하다-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는 매우 큰 파장을 불어일으킨다. 이 논문은 바로 그가 소셜 텍스트에 기고했던 자신의 논문이 아무런 의미없는 여러 과학이론을 억지와 궤변으로 끼워맞춘 엉터리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즉, 그런 엉터리 논문이 수록되었다는 것 자체를 비아냥거린 셈이었다. 그리고 이런 계획을 앨런은 보기 좋게 성공했다. 

이후 소칼 교슈는 1997년 10월 물리학자 장 브리크몽(Jean Bricmont)과 함께 다시 -지적 사기(Fashionable Nonsense)-라는 책을 프랑스에서 발표했다. 소칼은 이 책에서 당시 포스트모더니즘과 탈구조주의 이론을 이끌고 있던 자크 데리다, 질 들뢰즈, 자크 라캉, 펠릭스 가타리 들 저명한 프랑스 인문학자들을 '과학의 기본도 모르면서 과학을 우롱하는 사기꾼들'이라며 폄하했다.

이 책은 상당히 딱딱하다고 여겨지는 현대 철학가들의 사상을 여지없이 까발려 놓는다.
그들이 아는 체 하며, 있는 체 하며 늘어놓은 과학적 지식의 오류들을 찾아내 그들의 잘못된 지식을 근엄하게 타이르고, 때로는 꼬집고 비웃는다.

일반인들이 알지 못하는 것들을 온갖 수식어로 어렵게 묘사하는 현학적인 자세에 진짜 전문가들이 나선 셈이다. 이제 더이상 그런 꼴은 못봐주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결국 과학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척 하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 같다.
아니면 아는척 해서 책이나 좀 팔아먹고 매스컴에 오르내리려 하지 말라는 주의거나. 

여기서 얻게 되는 한 가지 교훈은 괜히 아는체 하지 말라는 것.
그리고 얻게 되는 지식은 철학가들이 도대체 무슨 헛소리를 잘못 저질렀는지 알게 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