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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Doctor/Movie

KINO(양철호)의 영화 이야기-11시. 그 어설픈 시간여행.

by 양철호 2014. 1. 28.

 

 

한 편의 영화가 나왔다.

사실 국내에서는 그다지 시도되지 않는 SF라는 장르에 나름 기대감을 가졌다.

그것도 시간여행을 소재로 했다니.

저예산으로 만들었던 '타임 크라임'이나, 독특한 설정으로 관심을 끌었던 '트라이 앵글'을 재미있게 본 나로서는 기대를 갖고 영화에 집중을 했다.

 

시간 여행.

누구나 한 번쯤 꿈꿔보는 공상일 것이다.

심지어 과거 군사적으로 실험을 진행했을 정도로 시간여행은 여러모로 보나 매력적인 부분이 있다.

경험하지 못한 세계에 대한 기대감이 그만큼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영화는 완성되어 공개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SF도 아닌 스릴러도 아닌 이도저도 아닌 어설픈 내용만이 남게 되었다.

 

 

시간 여행은 사실 여러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되어 왔다.

과연 가능할 것이냐에 대한 이론이다.

평행우주 이론에 의해서 시간의 편도 여행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왕복 여행은 불가능하다는 이론도 나오고,

부친살해 파라독스나 여러 문제들, 즉 과거에 일어난 사건은 바뀌지 않는다는 이론 등에 의해서도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있다.

물론 빛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만 있다면 시간을 거슬러 가는 것도 가능하다는 주장도 있다.

문제는 이 모든 것은 그저 이론일 뿐이라는 점이다.

영화에서도 과거로의 여행을 이들은 포기한다.

즉 과거로의 여행은 이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전제로 시작한다.

어찌 보면 상상력으로 커버할 수 있는 부분인데도 이들이 포기한 이유는 영화적 내용에 의한 의도적 선택으로 보인다. 즉 과거에 일어난 사건에 대한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서 먼저 해결해야 하는 것이 미래에 대한 왕복 여행인 것.

 

 

사실 재미있는 대사가 있다.

정재영은 미래로 갔다가 되돌아오는 것 또한 과거로 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과거로의 여행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비해 최다니엘의 대사에서는 그것은 늘어난 고무줄이 되돌아오는 것과 같은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내가 생각하는 개인적인 이론은 만약 미래로의 왕복 여행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결국 과거로의 왕복 여행도 가능하다는 이론이 만들어진다.

물론 나는 시간여행이 불가능하다는 이론에 손을 들어주고 싶지만 말이다.

 

잠깐 영화의 내용을 보면 주인공은 하루 미래로 여행을 가지만 파괴된 연구실의 모습만 보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무인카메라 영상을 가지고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왜 연구소가 파괴 되었는지 원인을 분석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연구소는 조금씩 영상에 담겨있는 대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미래에 벌어질 일임에도 이미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일어난다는 식이다.

여기서 영화는 SF와는 선을 그어 놓고 스릴러로 돌아선다.

하지만 그 스릴러는 긴장감을 던져주는 스릴러가 아니라 충분히 예측 가능한 결론을 늘어 놓은 그저 밋밋한 심리 묘사에 지나지 않게된다.

 

 

즉 이야기의 긴장 보다는 주인공들 각자가 가진 심리적 흥분 상태나 분위기에 억지로 몰입하게 만드는 것이다.

결국 이야기의 긴장감은 극도로 떨어지고

뻔한 결말을 향해 나아가는 전개 속도도 결코 느리지 않음에도 느리게 느껴지게 된다.

시간여행에 대한 이론은 사라져버렸고 생존의 문제가 걸리게 된다.

하지만 그 생존도 결말이 예정되어 있다.

영화적으로 예정된 것이 아니라 관객의 입장에서 예측이 너무 쉽게 된다는 것이다.

이제껏 시간 여행이 가져왔던 미덕인 스토리의 치밀함이나 복잡함과는 거리가 멀다.

과학적인 증명도 결국은 증명할 수 없는 종류의 시간여행이라는 소재를 택함으로서 객관성을 잃었고,

현상에 대한 배우들의 과도한 감정선도 영화의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고 말았다.

 

 

과연 이들이 해결할 수 있는 해결책은 없었을까?

미래의 김옥빈은 과거의 김옥빈에게 그저 영상을 보지 말라는 해결책밖에 제시할 수 없었을까?

다른 문제 해결 방법은 없었던 걸까?

어쩌면 다른 문제 해결 방법은 배체하고 이야기를 풀어가기 위한 틀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새로운 해석이나 새로운 시도는 봉쇄된 이야기 구조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첫 시도이지만 안타깝다.

과학적 증명이나 이론 보다는 오히려 시간의 엉킴에 대한 이야기가 더욱 흥미진진하게 전개될 수 있었던 소재였는데, 그것을 심리 사이코 스릴러로 풀어버린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타임 크라임'의 두 명, 세 명 등장하는 본인의 과거 형에 대한 서로간의 죽임은 이론적 문제 보다는 신선한 충격이었고, '트라이 앵글'의 원초적으로 되돌아가는 무한 반복의 시간 갇힘 역시 충격이었다.

그러나 이 11시는 어쩌면 그런 위험할 수도 있고, 매니아적인 요소를 일부러 피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이유 때문에 최초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에 민망해지는 것이다.

 

시간여행이 가능한지, 가능하지 않은지는 모른다.

개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에 한 표를 던지는 바이지만.

가능하다면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까?

정말 수많은 상상이 일어나지 않나?

이런 상상을 이 영화는 조심스럽게 일부러 내려 놓았다.

흥행 때문일지, 다루기 어려워서 일지는 모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