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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Doctor/Movie

KINO(양철호)의 영화 이야기-인물열전4. 키퍼 서덜랜드

by 양철호 2011. 12. 14.
갑자기 키퍼 서덜랜드라니?
한 물 간 배우를 왜? 라며 궁금해할 수도 있겠다.
지금은 끝나버린 미드(미국드라마) 24시의 팬이라면 좋아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블럭보스터의 주인공도 아니고, 지금 주목받은 새 얼굴도 아닌 배우를 다시 한 번 짚어주는 이유는 있다. 나에게는.


내가 키퍼 서들랜드를 맨 처음 만난 것은 다름아닌 '유혹의 선'이었다. 캐빈 베이컨, 줄리아 로버츠 등 당대 인기있는 배우들과 함께 열연을 펼치는 이 인물을 보면서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연기파 배우로 유명한 도널드 서덜랜드의 아들이었다.


이후로 그는 늘 아버지의 후광에 갇혀 지내는 듯한 인상이었다. 강한 이미지 때문인지 맡게 되는 역할도 결코 가볍지 않았다. '어퓨굿맨'에서는 몇 장면 안 나오지만 잭 니콜슨 못지않은 카리스마를 보여주기도 했고, '타임투킬'에서는 두려움을 갖게 만드는 집요함도 보여주었다. 다크 시티에서는 왠지 강인한 그의 이미지와는 달리 과학자 역을 맡아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런 그의 이미지와 딱 맞는 작품이 드디어 세상에 나온다. 바로 '폰 부스'.
콜린 파렐과 함께 열연한 이 영화에서 사실 가장 중요한 역을 맡은 것이 바로 키퍼 서덜랜드였다. 그는 전화를 걸어 살인을 저지르는 인물, 당시 실제했던 무차별 저격 사건과 맞물려 충격과 반향을 불러 일으킨 영화이기도 했다. 이 영화에서 키퍼 서덜랜드는 전화를 거는 목소리의 주인공. 그의 목소리는 차분하면서도 감정이 없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를 가지고 상대방을 어쩔 수 없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이 작품 때문이었을까? 아니겠지만 이 작품 때문에 그의 이미지가 각인되었고, 이 이미지는 그의 대박 드라마 24시로 고스란히 연결된다.


이제 키퍼 서덜랜드를 이야기하면서 24시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24시간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를 한 시간 단위로 잘라 리얼타임으로 보여주는 24부작 드라마. 결코 쉽지 않은 이 구성의 드라마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키퍼 서덜랜드가 연기하는 잭 바우어이다. 냉정함도 잃지 않고, 목표를 위해서면 동료의 목숨도 서슴치않고 버리는 비정하기까지 한 인물. 그런 그가 드라마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바라운관을 휘젓고 다니는 것에 사람들을 열광했다. 그에게 적은 너무나 거대했지만 그는 하나하나 거꾸러트린다. 군산복합체, 미국 대통령, 러시아 마피아, 아랍 테러리스트 등 가리지 않는 그의 활약에 모두들 혀를 내둘렀다.

24시의 성공을 바탕으로 키퍼 서들랜드는 마이클 더글라스와 에바 롱고리아와 함께 '센티넬'이라는 영화에 투입된다. 조연이지만 이 영화에서 그는 자신의 캐릭터를 고스란히 드러내며 마이클 더글라스와 대립각을 세우지만 사실 영화는 드라마의 긴장감도 채우지 못하는 지루함의 연속이었다. 역시 잭 바우어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 이야기의 밋밋함 때문이리라. 그리고 이제는 나이가 들어버린 마이클 더글라스를 전면에 내세운 실수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제 그의 행보에 관심이 간다.
대작을 내놓은 인물은 그 캐릭터를 벗어나기가 어렵다.
24시라는 걸출한 작품을 남겼지만 이제 키퍼 서덜랜드는 그 작품의 잭 바우어를 넘어야 하는 숙명이 남아 있다. 그래야 그로서 살아 남는다. 엑스파일이라는 불세출의 작품에서 멀더의 이미지를 구축했던 데이비드 듀코브니가 결국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제 새롭게 태어날 키퍼 서덜랜드가 우리 앞에 나타날지, 아니면 잭 바우어의 망령만 남겨 놓은채 사라져버릴지는 기다려볼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