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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호
스토리 파고들기, 문학, 영화를 비롯한 온갖 미디어, 그리고 세상 사는 이야기까지 다양하고 재미있는 스토리들을 찾아 소개하고, 분석하고, 뜯어고치는 곳. 세상을 향해 일갈하기도 하고, 가슴 따뜻한 이야기와도 만날 수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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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3. 20. 08:30 믿거나 말거나


쿠푸, 카프레, 맨카우레. 제 4왕조(기원전 2575년~기원전 2467년)의 세 명의 파라오가 기자의 피라미드를 건설했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바뀌지 않는다. 이것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고대 이집트의 여행 안내서에 대피라미드는 쿠푸 왕에 의해서 건설되었다는 해설을 적어놓은 이후부터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헤로도토스가 피라미드를 본 것은 기원전 5세기경으로, 완공된 지 2000년 이상이 경과한 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로도토스의 증언은 그 후의 역사적 판단의 기준이 되었다. 대개의 사람들은 전혀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아직도 그리스 역사가의 기록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단순한 풍문에 지나지 않았던 설이 현재에 와서 대피라미드는 쿠푸 왕, 제2 피라미드는 카프레 왕, 제3 피라미드는 맨카우레 왕이 건설했다는 이론의 여지없는 근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정통의 이집트 학자들에 따르면 피라미드는 세 파라오의 무덤으로 건설되었다고 한다. 그 이외의 목적은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그렇게 단정지으면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많다. 예를 들면 1818년에 유렵 탐험가인 조반니 벨초니가 카프레 왕의 피라미드 내부에서 넓은 현실을 발견했는데 속은 비어 있었다. 그저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휑하고 간결했다. 잘 다듬어진 화강암 석관이 바닥에 묻혀 있었지만 그 속도 비어 있었다. 관뚜껑은 둘로 쪼개져 근처에 떨어져 있었다.

이집트 학자의 대답은 명확하다. 옛날 그것도 카프레 왕이 죽고 몇 백 년이 지나지 않았을 때 도굴범이 현실로 들어와서 파라오의 미라를 포함하여 모든 것을 훔쳐갔다는 것이다.

맨카우레 왕이 만들었다는 제3 피라미드에 맨 처음 발을 들여놓은 영국의 하워드 바이스 대령은 1837년에 매장실을 발견했다. 당시 바이스가 발견한 현무암으로 만든 비어있는 석관과 인간의 형태를 한 목재 관 뚜껑과 뼈 몇 개는 당연히 맨카우레 왕의 유물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분석 결과 뼈와 뚜껑이 초기 기독교 시대의 것임이 판명되었다. 즉 피라미드 시대로부터 2500년이 지난 후에 누군가가 침입해서 매장한 것이다. 이런 일은 실제 이집트 역사에서 자주 있는 일이다.

현무암으로 만든 석관은 맨카우레 왕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불행하게도 조사할 수 없다. 바이스가 석관을 배에 실어 영국으로 가지고 오던 도중 스페인에서 침몰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결국 바이스도 비어있는 석관을 발견한 이후 왕의 미라는 도굴범들이 훔쳐간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쿠푸 왕의 유체도 없었지만 비슷한 추측이 나왔다. 학자들의 일치된 견해는 영국박물관의 조지 하트의 말에서 잘 드러난다. “쿠푸 왕이 매장된 후 500년이 지나지 않아 도굴범이 대피라미드에 침입해 보물을 훔친 것이 틀림 없다.”

쿠푸왕의 미라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수수께끼는 9세기에 카이로의 지배자로 이슬람 교도인 칼리프 알 마문의 기록에서 시작된다. 그는 석공들을 데리고 보물을 발견하면 나눠 주겠다는 약속으로 피라미드 북면에 굴을 뚫기 시작한다.

마문은 현대 고고학자들이 마문의 굴이라고 부르는 통로에 도달하게 되고 결국 피라미드 내부로 올라가는 통로에 도달한다. 그런데 통로 입구는 견고하고 거대한 현무암이 막고 있었다. 결국 석공들은 돌을 부수거나 자를 수 없었다. 대신 비교적 부드러운 주변의 석회암에 구멍을 뚫어 우회하기로 한다. 이것이 시사하는 것은 그 때까지 도굴범이 그곳에 도달한 적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우회를 해 드디어 피라미드 내부의 방에 도달한 마문과 석공은 보물로 가득찬 방을 상상했다. 그러나 방은 텅 비어 있었다. 세속적인 보물은 커녕 아무것도 없었다.

기원전 대피라미드가 세워진 후 500년 후에 정말 도굴범이 들어와 모든 것을 가져간 이후일까? 그들은 어떻게 들어와서 어떻게 나간 것일까? 만약 그런 통로가 있었다면 마문에 의해 발견되어지고 기록되어질 것이다. 현대의 발굴단이 마문의 통로를 발견한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마문은 그저 텅 빈 방만을 발견했다. 그것도 통로가 막혀 따로 굴을 파 우회할 수밖에 없었다.

대피라미드의 매장물은 정확하게 언제, 어떻게 사라졌을까? 이집트 학자들의 말처럼 쿠푸왕 사후 500년이 지난 시기에 도굴당한 것일까? 최근 발견된 여러 가지 증거들이 말하는 것처럼, 피라미드 내부는 피라미드가 밀폐된 당시부터 비어있었던 것이 아닐까? 마문과 그의 부하들보다 올라가는 통로의 입구를 막고 있는 현무암을 제거한 사람은 없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볼 때 그들보다 먼저 침입한 존재가 있을 가능성은 없다. 물론 다른 입구가 있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말이다.

posted by 양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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