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양철호
스토리 파고들기, 문학, 영화를 비롯한 온갖 미디어, 그리고 세상 사는 이야기까지 다양하고 재미있는 스토리들을 찾아 소개하고, 분석하고, 뜯어고치는 곳. 세상을 향해 일갈하기도 하고, 가슴 따뜻한 이야기와도 만날 수 있는 곳.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Notice

2018. 6. 11. 08:30 Story Doctor/Entertainment

일본 애니메이션인 바람의 검심은 일본의 막부 말기, 메이지 유신 초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당시의 서구 문명의 유입, 그리고 일본 내부의 어지러운 사회 상황과 잘 드러나 있다. 이야기는 막부 말에 활동했던 유신지사와 신선조의 대립 등을 토대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변화하는 일본 내부의 모습을 그려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물론 만화적인 상상력 또한 가미되어 화려함을 자랑하고 있다.

주인공은 켄신은 유신지사로 활동하면서 막부 요인 암살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인물, 결국 그것은 막부쪽 검객 신선조와의 피할 수 없는 대결을 가져오게 된다. 살수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깨닫게 된 켄신은 메이지유신 이후 살수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역날검을 사용하며 사람을 살리는 활검을 구추하게 된다.

다양하고 개성있는 캐릭터와 현실같지 않은 검술의 화려함은 이야기의 진지함을 가끔은 우스꽝스럽게 만들기도 하지만 지금 소개하는 '추억편'이라는 OVA에서만큼은 보이지 않는다. 살수로서 살아야 하는 주인공 켄신. 그리고 그의 얼굴에 새겨진 십자 모양의 흉터가 생긴 이유, 그리고 과거의 추억. 자신이 활검을 사용하게 된 사연 등이 들어 있는 이 작품은 가히 문제작이라고 해도 좋을 작품이다.

나는 이 작품을 보면서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다. 이는 어쩌면 이 작품이 추구하는 내용이기도 할 것이다. 즉 켄신이 후에 활검을 사용하게 되는 이유의 배경이 되기도 하는 이 대사는 아직도 내 머리 속에 꽤 깊이 남아 있으며, 애니메이션 명대사의 베스트에 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

(장면1)
어릴 적의 켄신. 아직 켄신이란 이름을 얻기 전 그의 이름은 신타였다.
신타는 인신 매매범에 붙잡혀 끌려 가고 있었다. 그러나 산적이 그들을 덮쳤고, 산적은 모두를 죽이고 물건을 빼앗으려 한다. 마지막 남은 어린 신타마저 죽이려 하는 산적들을 마침 지나가던 비천어검류의 전승자 세이쥬로가 구해주고는 돌아선다.
그러나 죽은 자들을 묻어주는 일이라도 해야 하겠기에 다시 돌아온 세이주로는 산적을 포함해 죽은 모든 이를 묻어준 아이를 보게 된다. 그 이후에 세이쥬로와 신타가 나눈 대화이다.


세이쥬로 : 나는 하코 세이쥬로, 검을 약간 한다.

신타 : 검.

세이쥬로 : 꼬마. 너는 둘도 없는 소중한 것을 지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 세 명의 목숨도 맡았다. 너의 그 작은 손은 그 시체의 무거움을 안다. 하지만 맡겨진 목숨의 무게는 그에 비할 바가 아니다. 너는 그것을 짊어지고 말았다. 스스로를 갈고 닦아 사람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가져라. 네가 살아 나가기 위해, 소중한 것을 지켜내기 위해.

신타 : 지켜내기 위해.

세이쥬로 : 꼬마 이름은?

신타 : 신타.

세이쥬로 : 너무 부드러워서 검객에겐 어울리지 않는구나. 네 이름은 지금부터 켄신이다.

신타 : 켄.. 신…





(장면2)
히무로 켄신이란 이름을 받고 세이쥬로 밑에서 비천어검류를 연마하던 켄신.
그는 세상이 흉폭해지고 사람들이 고통 는 것을 더 이상 보지 못해 스승에게 세상으로 내려가겠다고 한다. 하지만 세이쥬로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 둘의 대화이다.


세이쥬로 : 산을 내려가는 허락 못해!

켄신 : 스승님! 이러고 있는 동안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동란에 휘말려 죽어가고 있습니다. 지금이야 말로 이 힘을, 어검류를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쓸 때가 아닐까요.

세이쥬로 : 이 바보 제자가! 그 동란의 세상에 네가 혼자 나가서 어쩌겠다는 것이냐! 이 난세를 바꾸고 싶으면 어느 한 쪽의 체제에 가세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은 즉, 권력에 이용된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것을 위해서 너에게 어검류를 가르친 것이 아니야. 너는 밖의 일 따위에는 신경 쓰지 말고 수행에 전념하면 돼.

켄신 : 눈 앞의 사람들이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고 있습니다. 그걸 내버려두다니 전 그럴 수 없습니다.

세이쥬로 : 비천어검류는 비길 데 없는 최강의 유파. 비유하자면 육지의 검은 배(서양의 군함).

켄신 : 그러니까 그 힘을 지금이야말로 써야죠! 시대의 고난으로부터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그것이 어검류의…

세이쥬로 : 검은 흉기, 검술은 살인술! 어떠한 미사여구로 치장해도 그것이 진실! 사람을 지키기 위해 사람을 벤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사람을 죽인다. 그것이 검술의 진정한 이치. 나는 너를 구해줬을 때처럼 몇 백명의 악당들을 베어 죽여왔다. 허나 그들도 역시 인간. 이 삭막한 시대 속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던 것에 지나지 않아. 이 산을 한발짝 나가면 기다리고 있는 것은 각각의 양립될 수 없는 정의에 조종당한 끝도 없는 살인뿐. 그것에 몸을 던지면 어검류를 너를 대량살인자로 만들고 말 것이다.

켄신 : 그래도.. 저는…이 힘으로 괴로워 하는 사람들을 구하고 싶습니다. 한 명이라도 많은 사람을 많은 목숨을 이 손으로 지키고 싶습니다. 그 때문에…스승님!

세이쥬로 : 너 같은 바보는 이제 모른다. 어디로 가든 얼른 꺼저버려!

켄신 : 고맙습니다.

------------------------------

세이쥬로의 대사는 검이 가지는 의미뿐만 아니라 세상의 대립이 가져오는 현실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고 있다. 바람의 검심은 바로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posted by 양철호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잘보고갑니다~

2018. 6. 1. 08:00 Story Doctor/Movie


넷플릭스의 새로운 영화 서던리치 소멸의 땅이 공개되었다.

아니, 공개된 지 한참이 지났지. 그걸 이제서야 보게 된 거고.......

스토리는 운석이 떨어진 곳에 이상현상이 일어나고, 그 곳을 탐사하러 떠난 탐사대는 한 명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다섯 명의 과학자들로 구성된 탐사팀이 이상현상이 있는 곳을 탐사한다는 내용. 

얼핏 보면 심플해 보이기도 하고, 자주 봐왔던 이야기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내용으로 들어가면 결코 단순하지만은 않은 복선과 설정들로 가득하다.



우선 출연배우 면면은 화려하다.

'부르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에서 강렬한 연기를 선보였던 제니퍼 제이슨 리. 

여전히 왕성환 활동을 하고 있는 나탈리 포트만, 

'토르 라그나로크'에서 발키리로 출연했던 테사 톰슨. 

거기에 '닥터 스트레인지'의 웡, 마르코 폴로에서 쿠빌라이 칸을 연기했던 베네딕트 웡까지. 

이 배우들의 조합으로 영화는 연기에 대해선 최상의 조합을 보여준다. 

난 이 영화를 보면서 두 가지가 떠올랐다.

하나는 에이미 아담스, 제레미 레너가 출연하고 드뇌 빌뇌브가 연출한 컨택트였다.

어둡고 암울한 분위기의 시작과 사연을 깊이 간직하고 있는 인물들의 출연은 왠지 모르게 닮아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바로 체르노빌이다.

서던치리에 들어가서 보이는 것들은 유전자가 붕괴되어 혼합된 생태계의 모습이다. 

사람이 하나도 없는 죽어버린 땅. 

유전자가 변형되어 버린 죽음의 땅. 

서던리치의 모습에서 체르노빌을 보게 된 것은 나의 과대망상일까? 



상어의 이빨을 가진 악어. 

여러 다른 종류의 꽃을 피우는 나무,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내는 거대 맹수, 

나뭇가지를 뿔 대신 가진 사슴,

그리고 사람 모양으로 자라는 식물들이다.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리고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것일까?

영화는 이유에 대해서는 답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상과 이유 대신에 서던치리에 들어간 사람들의 심리에 초점을 맞춘다. 

군인들도 실패한 서던리치 탐색을 여자들로 구성된 과학자들이 탐험한다.

그 중에는 현실로 돌아가야 할 이유가 없는 사람도 있으며, 서던리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말 알아야만 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모두 하나씩 희생되고 죽어간다.

등대에 도착해 정체불명의 생명체를 보게 된 주인공.

그리고 주인공 역시 과거의 자신과는 지금의 자신이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무엇이 바뀌고, 무엇이 변한 것일까. 

변했다면 과거의 자신과는 전혀 다른 존재인 것일까?

외형과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데. 



영화의 원제는 '전멸'이다.

말 그대로 서던리치 현상이 일어나는 구역은 계속 확대되고 있다.

세상을 뒤덮는다면 지금의 세상은 사라져버릴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전멸을 말하는 것일까?

서던리치 안에서 유전자는 서로 섞이고 재구성된다. 지금의 생명체는 전멸이 될지 몰라도 새로운 생명체는 태어날 것이다.

그것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과학자들은 진화가 좋은 방향으로만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진화란 제멋대로라고.

어쩌면 서던리치에서 일어나는 일 역시 외계의 개입에 의한 진화는 아닐까. 


영화에서 유일한 생존자인 나탈리 포트만을 심문한 학자들은 이 모든 사건이 외계의 생명체의 소행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싶어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생존자인 주인공은 외계 생명체가 어떤 의도가 있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아니 의도라는 것이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생명은 어떤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앞으로 나아갈 뿐인 것은 아닐까.


영화의 첫 장면이 떠오른다.

생물학자인 주인공은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세포의 분열을 보여준다.

세포들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분열을 할까?

아니면 그저 분열을 하는 것일까?

우리의 의도대로 되는 세상이 과연 있는 한 걸까?

아니면 의도는 가지고 있지만 그냥 살아가는 것일까?


원작 소설은 두 권의 내용을 더 남겨두고 있다.

경계기관, 빛의 세계다. 

이 두 편이 계속 영화화되어 나오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책이라도 사서 봐야겠다.

posted by 양철호

댓글을 달아 주세요

prev 1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