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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거나 말거나

KINO(양철호)의 세계의 미스테리-아이린 모어의 미스테리

by 양철호 2011. 12. 7.

스코틀랜드 북서쪽에 아이린 모어(큰 섬이라는 의미)라는 섬이 있다. 이 섬은 지금가지 '메리 셀레스트'호와 더불어 바다의 가장 큰 미스테리로 남아 있는 곳이다.



19세기의 마지막에 영국의 해외무역이 증가한다. 그로 인해 교역량이 많아지만셔 문제는 스코틀랜드 지역을 통해 들어오는 배들이 종종 난파한다는 점이었다. 이를 막기 위해 영국에서는 아이린 모어에 등대를 설립할 계획을 세운다.

등대는 애초 건립 기간인 2년을 훌쩍 넘겨 5년 만에 아이린 모어의 60미터 절벽 위에 세워졌다. 그것이 1899년 12월이다. 그 이후부터 세 명의 상주하는 등대지기에 의해 아이린 모어 등대의 불빛은 사나운 바다에 빛을 계속 비춰 주었다. 그런데 1900년 크리스마스 11일 전에 등대의 빛이 사라졌다.

영국에서는 등대를 조사할 배를 보내려 했으나 기상이 너무 험해 당장 배를 보낼 수 없었다. 결국 십여일을 기다려 1900년 크리스마스 다음날 배를 타고 아이린 모어에 상륙했다. 날은 맑았지만 파도는 여전히 높아 배를 대는 데 세 번이나 시도할 정도였다고 한다. 어쨌든 섬에 상륙하면서부터 무언가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섬에 배가 도착했는데도 등대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던 것이다. 등대 안에도 사람의 인기척은 전혀 없었다. 등대장은 일지를 써 놓았는데 일지는 12월 15일이 마지막이었다. 바로 불이 꺼진 날과 일치했다. 하지만 등불의 기름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심지도 가지런히 정리가 되어 있었다. 분명 세 명 모두 무언가 사고를 당해 등대를 켤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그 사고의 정체였다. 도대체 무슨 사고가 그들 세 명 모두를 삼킨 것일까.

상황은 무척 단순해보였다. 섬과 등대 주변 곳곳에는 폭풍의 흔적이 역력했다. 방파제도 일부 파손되어 있었고, 해면에서 20미터 높이에 매달아 놓은 공구통도 줄만 남고 사라져버렸다. 파도가 삼킨 것이다. 즉 세 명의 등대지기는 무슨 이유로 폭풍 속에 나왔고 그들을 거친 파도가 덮친 것이다. 그런데 왠지 이상했다. 지침에는 최소한 한 명은 등대에 남았어야 했다. 모두 등대를 비우고 밖으로 나가는 것은 옳지 않은 행동이었다. 등대 안에는 방수복이 두 벌이 없어지고 한 벌이 남아 있었다. 이 사실은 두 명이 등대 밖으로 파도에 휩쓸렸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한 벌의 방수복이 남아 있다는 것은 최소한 한 명은 등대에 남아 있어야 한다는 지침과 일치한다. 그렇다면 나머지 한 명은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문제는 또 있다. 등대장이 기록으로 남긴 일지다. 일지의 마지막 기록인 12월 15일에는 폭풍이 오지 않았다. 날짜를 착각한 것일까? 하지만 그럴 수도 없는 게 마침 15일 밤에 그 근처를 지나던 상선이 아이린 모어 섬의 등대를 보지 못했다는 선장의 증언이 나왔다. 폭풍에 휩쓸려 간 것이 맞다면 15일 밤에는 등대의 불이 켜 있어야 하고, 16일 폭풍이 온다는 기록 정도도 남아 있어야 맞다. 그런데 모든 것은 폭풍이 오기 전 고요하기만 한 15일에서 멈춰 있었다.

몇 가지 추측이 오간다. 등대지기 중 한 명이 바다에 빠지고 이를 구하기 위해 뛰어들었다가 변을 당한다는 추측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구명대가 준비되어 있었다. 구명대를 던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바다로 무턱대로 뛰어들 정도로 무모하다는 말일까? 십분 양보해 구명대를 던졌는데 잡지 못 해 한 명이 더 뛰어들었다고 가정해도 나머지 한 명은 구명 로프를 붙잡고 남아 있는 게 맞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방송 해설자인 발렌타인 다이알은 그의 저서 [미해결의 미스테리]에서 아이린 모어의 섬에서 경험한 이야기를 적어놓고 있다. 평온한 날씨와 잔잔한 파도였는데 갑자기 해면이 솟아 올라 20미터가 넘는 파도가 방파제를 덮치고는 1분 후 다시 고요한 바다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조수의 변화로 인한 갑작스러운 파도에 세 사람이 희생된 것은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앞에서 제시한 방수복을 입지 않은 한 명에 대한 해답이 없다. 방파제로 나가기 위해서는 방수복을 반드시 입어야 한다. 더군다나 세 명이 모두 방파제로 나가는 일도 드물다. 그럴 이유도 없다. 만약 두 명이 방수복을 입고 방파제에 나갔다가 파도에 휩쓸렸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나머지 한 명이 방수복도 입지 않고 뛰어 나갔다가 함께 변을 당했다라고 볼 수 있을까? 그렇게 나머지 한 명이 행동했을까? 그렇게 위험한 행동을 미련하게 했을까?



결론은 이렇다. 19세기가 막 끝나고, 20세기가 시작하려는 순간, 아이린 모어의 등대에서 세 명의 등대지기가 모두 실종되었다. 그런데 그들이 왜 어떤 이유로 사라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단서는 제대로 남겨져있지 않다는 점이다. 진실은 무엇일까?